fnctId=bbs,fnctNo=3724 RSS 2.0 총 5 개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게시물 검색 제목 작성자 게시글 리스트 내가 만난 역사, 내게 남은 기억 들어가며솔직히 말해야겠다. 갈수록 기억력이 떨어진다. 명사가 생각나지 않은지는 오래되었다. 그때마다 스마트폰 검색 서비스의 도움을 받는다. 배우 유해진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그가 출연한 영화의 이름을 가까스로 떠올린 다음, 영화의 출연 배우를 검색해서 유해진이라는 이름을 찾는 식이다. 이렇게 돌고 도는 과정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누군가가 아는 체 하는데 도무지 기억이 안나 대강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 한참 생각하는 일도 흔하다. 온라인의 각종 비밀번호를 맞추지 못해 다시 설정하는 일은 일상이다. 머리가 장식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서서히 치매를 맞고 있는 것 같다.살면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딱 한 번 스친 사람의 얼굴과 이름도 기억해 당사자를 놀라게 하던 나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검색 서비스가 없으면 어떻게 살까. 검색 서비스에 길들여지고,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다보니 뇌가 과부하에 걸렸거나 퇴화해버린 건가 싶기도 하다. 날마다 너무 많은 음악과 뉴스와 정보를 들이다보니 그만큼 방류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일 수 있지 않을까.하지만 어떤 기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기억은 최근 기억부터 지워진다고 했던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은 특정 공간을 마주하거나 동일한 날짜를 맞이할 때마다 소나기처럼 엄습한다. 그 때 그 공간과 순간의 공기와 소리들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살아가는 한국인 시스젠더 남성이 간직하는 기억은 무수히 많다. 혼자 경험한 기억이기도 하고, 함께 경험한 기억이기도 하다. 일상의 기억이기도 하고, 역사적인 기억이기도 하다. 일상은 무수한 기억들이 교차하며 쌓인 지층이자 화석이다. 이미 완성되어 단단하게 굳어버린 화석이 아니다. 지금도 생성과 변화를 멈추지 않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재의 삶에 따라 과거의 기억은 계속 의미와 울림을 바꾼다. 그때 몰랐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되기도 하고, 그때는 알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아무 것도 몰랐기도 하다.1973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정규교육과정을 거친 서울 거주 시스젠더 글쟁이 남성을 관통하며 정체성을 만든 역사적 사건은 무엇일까. 내가 세상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를 만난 것처럼 느낀 순간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사건과 광주항쟁, 제 5공화국 출범, 아웅산 테러, 1987년 6월 항쟁, 1987년 대통령 선거 같은 사건들일 것이다. 아니다. 한동안 저녁 무렵이면 거리의 모든 사람을 멈춰 서게 한 국기 하강식일지 모른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극장에서 울려 퍼진 애국가와 그 때마다 일어서던 기억일 수도 있다. 각종 국제 경기에서 대한민국을 응원하던 기억도 나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 후에도 수많은 사건들이 나를 스쳐갔다. 1987년 789 노동자 대투쟁과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1997년 IMF 구제금융사태와 2014년의 세월호 참사, 2020년의 코로나19 바이러스 판데믹까지 잊을 수 없는 사건은 무수히 많다.그런데 어떤 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하는 과정은 나만의 판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뉴스매체와 책과 소셜미디어에서 끊임없이 언급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되새겨야 한다. 그런 사건은 누구에게든 비중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한국 현대사를 다루는 영상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사건은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 나와 별 관계가 없더라도 주목해야 할 것 같다. 그 때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해야 할 것 같다.대부분의 사건이 지닌 가치는 시간이 지난 후에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들이 쏟아지고 겨루다가 특정 견해가 공식적인 견해로 인정받고 명명된다. 그 사건과 관련된 이들에게 마이크가 주어지고 권력을 갖게 되거나 사회의 관심이 집중된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활동은 특정한 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거나 역사적 평가를 다르게 부여하려는 쟁투인 경우가 많다. 419세대라든가, 6 3세대, 586 같은 단어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대상 자체가 이렇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거친 사건들의 모음과 연결이지 않을까.처음 만난 역사생각난다. 태어나 처음으로 만난 대통령은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신헌법을 통과시키고 종신대통령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리 단위에 사는 미취학아동에게 대통령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일 테지만 박정희가 비로소 나에게 현실감 있게 다가온 것은 그가 죽은 뒤였다. 갑자기 대통령이 죽었다고 하더니 텔레비전에서 만화영화를 볼 수 없어졌다. 하루 종일 암울한 음악과 함께 박정희의 생전 모습만 보여주는 텔레비전은 하염없이 지루했다. 대통령이 죽었다고 왜 마징가Z를 볼 수 없느냐고 물어봐도 뿔이 난 어린이의 짜증에 귀를 기울여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세상이 망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국민학교 1학년 반장이었던 나는 동네 파출소에 급조한 분향소에 가서 절을 했다. 당연히 혼자 자발적으로 갔을 리 없다. 분명 전교생이 다 가지 않았을까. 1학년 반 대표로 어설프게 향을 올릴 때는 왠지 눈물이라도 흘려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느껴졌지만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이상한 일은 대통령이 죽었다는 사실만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TV에는 최규하라는 사람이 대통령이라 했다. 대통령이 이렇게 빨리 바뀔 수 있는지 몰랐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처럼 등장했다. 1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대통령이 계속 바뀌니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말단경찰관이었던 아버지나 아버지의 친구들, 그리고 어머니나 선생님들 가운데 누구도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를 당황하게 했던 일들에 10 26 사건이나 12 12 쿠데타 같은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10여년이 지난 뒤였다.내가 겪은 5 18이상한 일은 계속 이어졌다. 박정희가 죽은 다음 해 봄 아버지는 갑자기 광주로 불려갔다. 광주에서 데모가 벌어져 막으러 가야 한다 했다. 그런가보다 했는데, 아버지는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흉흉한 소문이 들려왔다. 아버지가 광주에서 죽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TV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머리를 싸매고 단칸방에 드러누웠다.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어머니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그 때 나는 머리를 동여맨 수건을 갈아주는 방법조차 몰랐다.이해할 수 없는 일은 광주에서 데모대가 왔을 때 절정을 이루었다. 아버지는 데모를 막으러 광주에 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인데, 동네사람들은 광주에서 온 데모대를 맞이한다고 모두 신작로로 몰려갔다. 그 후 광주항쟁을 다룬 영상에서 너무 많이 보았던 장면이었다. 소형 버스에 올라탄 사람들, 아마도 시민군이었을 이들이 광주에서 전라남도 곳곳으로 흩어져 광주의 상황을 알리고 투쟁을 호소하기 위해 돌고 있던 순간이었다. 버스에 무어라 쓰여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전두환을 때려잡자 같은 구호를 써놓지 않았을까. 다만 버스에 올라탄 사람들의 빛나던 표정과 거의 모든 동네사람들이 다 몰려나와 박수를 쳐댔다는 사실만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버스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하지만 그 순간의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아버지는 곧 돌아오셨다. 지친 표정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바나나를 사가지고 왔는지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사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때 나의 관심은 딱 그 정도였던 거다. 그리곤 나는 그 일을 잊어버렸다. 어느 누구도 다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다 국민학교 6학년 즈음 목소리를 낮춰 그 일을 이야기 한 친구가 있었다. 국군이 광주사람들을 죽였다고 했다. 세상 물정 하나도 몰랐던 나는 어떻게 배달의 기수에 나오는 국군이 사람을 죽일 수 있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나보다 훨씬 세상을 많이 아는 것 같아보였던 친구는 코웃음 치며 나를 비웃었다.친구의 말이 맞다는 걸 알기 위해서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1987년 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전국을 돌며 5 18 사진전을 벌였다. 그 행사가 그거였는지 알게 된 것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 때 알았던 건 목포 가톨릭 회관에서 5 18 사진전시회를 한다는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터넷도 없던 시절 그 소식을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아마도 먼저 다녀온 친구 누군가가 이야기해준 게 아니었을까. 가톨릭회관 건물 계단에 빼곡하게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내 앞쪽에는 중학교 국사 선생님인가도 서서 기다리고 계셨다. 줄은 느리게 움직였고, 나는 결국 그 사진들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보고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았다는 기억은 없다. 전시장에 어떤 사진이 걸려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그곳에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는 사실 뿐이다.2년쯤 시간이 지난 후 광주사태 관련 청문회가 열리고 방송국에서 특집방송을 방영하고 나서야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혼자 탐독하기 시작한 인문사회과학 책들의 도움이 컸다. 광주의 외삼촌 집에 비밀스럽게 꽂혀 있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책을 몰래 읽은 것, 그리고 홍희담의 소설 깃발 을 읽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렇게 나의 5 18 기억이 풍성해졌다.그 후 대학에서 이런 저런 자료와 책을 읽으면서 광주는 전두환과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의 의도적인 양민학살일 뿐 아니라, 미국의 방조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대학교 3학년 즈음 뒤늦게 망월동 묘역에 순례를 갔을 때, 5 18은 완전히 살아있는 실체로 다가왔다. 허름한 묘지에 다닥다닥 붙은 무덤들을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그때부터는 전두환, 노태우와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5 18이 공식적 평가와 법적 처벌 과정을 얻기 위해서는 2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전국적으로 벌어진 투쟁에 밀려서야 전두환과 노태우는 16년 만에 법정에 섰다.그 후의 역사는 모두 아는 바와 같다. 5 18은 공식 국가기념일이 되었고, 망월동에는 새로운 묘역이 생겼다. 2000년 즈음부터는 광주에서 5 18 행사를 하는데 어떤 어려움도 없었다. 정부에서 예산이 나왔고, 경찰이 행사를 보조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감옥에서 늙어 죽는 일이 벌어지지는 못했지만, 5 18 문제는 대부분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따금 이어진 5 18 관련 예술작품들과 끊임없는 사회적 논란은 역사와 기억에 대한 질문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학살과 저항, 주먹밥 공동체, 권력 찬탈 정도로만 알고 있으면 될 것 같았는데, 여러 예술작품과 연구 서적들은 개개인의 삶에 스민 역사를 계속 살펴보지 않으면 역사와 기억이 얼마나 얄팍해질 수 있는지 아느냐며 끊임없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5 18은 상징이 된 몇 가지 이미지만으로 기억되어서는 안 될 사건이었다. 아니 요약할 수 없는 현재였다. 피해자이자 저항자로서 살아남은 이들 다수가 살아있었고, 그들이 감당한 상흔과 무게감은 책 몇 줄로 정리하기 불가능했다. 그들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5 18이 5 18의 전부가 아니었지만 그들의 기억과 심연에 귀 기울이지 않고는 실체에 다가설 수 없었다. 기억과 흔적은 곳곳에 다르게 존재했다. 우리는 5 18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았다.특히 5 18의 역사를 지우거나 변형하고 왜곡하려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기억은 격전의 현장이 되었다. 북한의 개입이 있었다거나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광주와 5 18을 조롱하는 사람들도 인터넷에 흔했다. 구 전남도청을 다르게 활용하려는 움직임 또한 논란이 되었다. 그 때 사라진 사람들을 다 찾지 못했고, 발포명령을 한 사람이 누군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5 18의 진실을 흔들고 의미를 축소하려는 이들은 곳곳에서 출몰했다. 어떤 역사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끝나지 않았다.그만큼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벼락처럼 5 18을 만난 이후 40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나에게 5 18은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지만 한국전쟁은 지나간 사건이었던 것처럼 5 18의 경험이 없는 세대들이 계속 태어났다. 그들에게는 5 18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방송과 책으로 만나는 5 18은 간접 경험일 뿐이었다. 기억은 강요할 수 없고 이식할 수 없었다. 의도적으로 기억을 만드는 일도 불가능했다. 나도 1973년에 전라남도에서 태어났고, 1980년에 전라남도에 있었기 때문에 어떤 기억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건 전적으로 우연이었고, 어쩌면 운명의 장난 같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더더군다나 어느 정도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건, 너무나 큰 역사적 사건은 무게와 의미에 짓눌리기 마련이었다. 참고서의 공식을 외우듯 외우는 과정을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역사에는 수학공식 같은 정답이 오히려 해가 되었다. 직간접적 경험이 없는 이들이 사건을 경험한 이들의 기억에 잠재한 정서적 울림을 공유하면서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기억은 몇 월 몇 일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지 않는 일만이 아니었다. 기억은 사실 관계를 잊지 않는 일이며, 그 때 느꼈던 감정의 울림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일이기도 했다. 감정의 울림이야 말로 기억을 기억으로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잊더라도 감정은 앙금처럼 남았다. 슬픔이건 기쁨이건 분노이건 좌절이건 사건이 파생시킨 감정은 사실이라는 실체를 실질적으로 구성할 뿐 아니라, 그 실체를 기억할 이유가 되었다. 감정은 자신이 사건과 맺은 관계의 종합이었다.그런데 5 18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사건과 맺은 감정의 교감이 없거나 약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감정은 계속 변화하기 마련이었고, 그에 따라 기억도 달라졌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었다.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이 섞이며 기억은 계속 새로워졌다. 당사자에게 이렇게 변화무쌍한 기억이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형성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도 감정의 울림을 만들고 쌓을 기회를 주어야 했다. 5 18의 경우라면 학살에 대한 충격이든, 숭고함에 대한 감동이든, 목숨을 건 저항에 대한 경외이든, 자신만의 체험이든 새로운 감정의 기억을 만들어주어야 했다. 당사자에게는 너무나 생생한 기억일지라도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게 이어지지 못하는 기억은 역사가 될 수 없었다.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법적 처벌을 이뤄내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기억을 이전하고 계승하는 것, 새로운 이들에게 감정과 기억의 역사를 창출하는 숙제가 생겨났다. 강변하고 목소리를 높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강풀의 웹툰 「26년」이나 한강의 「소년이 온다」, 연극 푸르른 날에 , 짬뽕 , 방탄철가방 , 영화 스카우트 , 택시 운전사 , 오월愛 , 김군 같은 작품이 계속 필요한 이유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 만 계속 불러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임을 위한 행진곡 이 너무나 감동적인 노래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이 노래가 무덤덤하게 아니 구태의연하고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기억을 잇기 위해서는 세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른 매개가 필요했다. 그 과정은 역사적 사건을 끊임없이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공식화되는 평가와 상징의 가치와 의미만큼 계속 새로운 이야기와 상징을 만들어 교감하고 정형화 되지 않게 만드는 일을 병행해야 했다. 비슷한 의미라도 다른 이야기를 통해 전달될 수 있게 해야 하고, 현재의 시대 속에서 살아 있는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그것이 진정한 계승이고 가치의 복원이며 기억의 지속이었다.하지만 5 18처럼 어려운 과정을 거쳐 뒤늦게라도 계속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는 사건은 많지 않았다. 워낙 많은 사건과 사고가 벌어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주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을 다 기억하고 동의하며 공감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기억과 공감의 총량은 딱 정해진 양만큼이어서 한쪽으로 쏠리면 다른 쪽에는 소흘해지기 마련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많은 이들이 기억하지 않는 사건, 별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사건, 시간이 흐르면서 더 풍부해지지 못하는 사건도 있다. 그 중 두 사건의 기억이 나에게는 여전히 묵직한 마음의 짐으로 쌓여 있다.1991년 봄의 기억하나는 1991년 5월의 기억이다. 그해 봄 명지대학교 신입생이었던 강경대가 학교 앞에서 시위를 하다가 전투경찰에 의해 맞아죽었다. 죽음은 강경대로 끝나지 않았다.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박창수, 이정순, 김기설, 김철수, 정상순, 윤용하, 김귀정까지 열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누군가는 스스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고, 누군가는 시위 도중에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밀려 압사 당했다. 대학에 가면 꽤 많은 시위를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한 학기가 다 가기도 전에 이렇게 많은 죽음을 만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신문을 펼치기 두려웠고, 강의실에 들어가 웃을 수도 없었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 대학 새내기의 찬란한 봄은 학교보다 거리에서 더 많이 펼쳐졌다. 지금처럼 문화제를 열어 평화롭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시위는 대학교 교문 앞의 최루탄과 화염병 공방이거나, 수원/안양/서울 등지에서 예고 없이 거리로 뛰어드는 가두투쟁이 대부분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젊은 넋들이 지는 소식을 들으며, 거리에서 눈물을 떨구는 사이 봄이 지나갔다. 그래도 어쨌든 싸우다 보면 1987년처럼 세상이 바뀔 줄 알았는데, 웬걸 그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었던 싸움은 왕년의 저항시인이 쓴 칼럼과 국무총리에게 쏟아 부은 계란과 밀가루 세례로 저물어버렸다. 물론 1991년 5월의 투쟁이 단지 그 사건들만으로 멈추었을 리 없다. 너무 많은 죽음이 이어지고, 거리 투쟁이 계속되다보니 운동권들도 지치고 시민들도 지쳤을지 모른다. 이 정도 일로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도 거리에서 쫓겨나듯 학교로 돌아왔고 계속 다른 일로 바빴다.그런데 기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매년 봄이 되면 그때 세상을 떠난 이들이 떠오르곤 했다. 나는 나이 들고 늙어 가는데 그들은 항상 그대로였다. 나의 나이와 그들의 나이가 자꾸만 멀어지면서 그때의 기억과 감정은 차츰 희미해졌다. 대신 새로운 생각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젊어도 너무 젊었다. 아니 젊다기보다는 어리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비슷한 연배일 때는 몰랐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그들이 미처 살지 못한 시간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나이가 어리다고 세상을 모르는 게 아니고, 나이가 많다고 더 많이 알거나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반드시 오래 살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들을 조금씩 잊고, 그다지 잘 살지도 못하는 시간들을 비루하게 살아가는 현실이 매년 봄이 되면 견딜 수 없게 미안해졌다. 결국 이런 세상밖에 만들지 못했는데, 먼저 가버린 이들의 영원히 젊은 얼굴 앞에서 참담하고 부끄러웠다.당시 거리에서 외쳤던 요구들을 실현하지도 못한 채 어영부영 끝나버린 투쟁은 변변한 이름조차 얻지 못했다. 4년 먼저 벌어졌던 1987년 6월 항쟁은 하나의 세대를 출현시키고, 집권세력을 바꾸었으며, 천만이 보는 영화가 되었다. 하지만 1991년의 봄은 겨우 몇 권의 책과 다큐멘터리로 남았다. 그 때 거리에서 싸웠던 이들은 이름을 얻지 못했고, 그 시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도 없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이야기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억도 확장되지 못했다. 기억을 확장시킬 수 있는 사건이 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것도 권력이 될 수 있으며, 그러지 못하는 사건은 기억하는 이들에게 오래오래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감히 비교할 수 없겠지만 5 18 이후의 시간을 침묵하며 견뎌야 했던 당사자들이나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우는 이들의 마음이 이와 같을까. 하지만 기억이 상처가 되고 죄책감이 되고 부채가 되는 경험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1996년 여름의 연세대학교1996년 여름의 기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해 여름 나는 연세대학교에 있었다. 범민족대회 때문이었다. 통일운동 진영에서 8 15 즈음 진행하는 범민족대회는 평화롭게 열렸던 적도 있었지만,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열린 적도 많았다. 1996년 범민족대회 역시 원천봉쇄 되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연세대학교에 들어간 뒤 나는 사수대가 되었다. 본대오가 집회를 하는 동안 사수대들은 번갈아가며 학교 곳곳을 지키면서, 계속 학교 안으로 들어오려는 전투경찰과 맞서 싸워야 했다. 건물 안에서 자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사수대는 길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자야 했다. 샤워는커녕 속옷조차 갈아입을 수 없었다.범민족대회는 한총련의 역량을 총결집하는 행사라 학교 안에는 전국에서 온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대개 원천봉쇄를 하면 학생들의 출입만 통제하는데, 경찰은 끊임없이 진입작전을 펼쳤다. 머리 위로 시도 때도 없이 여러 대의 헬리콥터가 날아다녔다. 대학시절 꽤 많은 집회에 참여했지만 헬리콥터가 동시에 여러 대 날아다닌 집회는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범민족대회 행사가 끝나가는데도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행사가 끝나면 서로 타협해서 퇴로를 열어줄 줄 알았는데, 학교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고 학교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무사귀가를 요구하는 한총련에 대해 정부는 초강경 사법처리 방침으로 맞섰다.그리고 8월 17일이었을까. 이러다 전부다 잡혀가는 건 아닌지. 그렇게 되면 나이가 많은데다 사수대인 나는 구속되는 건 아닌지 걱정과 두려움과 분노와 피곤이 뒤죽박죽되어 있던 아침, 전투경찰이 쉬지 않고 밀고 들어왔다. 학생식당에서 따뜻한 아침을 먹고 한숨 돌리고 있었는데, 경찰이 갑자기 밀고 들어오면서 종합관 건물에 갇히고 말았다. 사수대는 우왕좌왕 하다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 순간 헬리콥터가 옥상 가까이 내려왔다. 헬리콥터가 다가오자 옥상의 모든 것이 떠올랐다. 신문지가 떠오르고 스티로폼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공중부양이었다. 헬리콥터 소리 때문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건 헬리콥터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뿐이었다. 햇살 쨍쨍한 여름이었다. 현실 속에 있는데 현실 같지 않았다. 꿈이라면 빨리 깨고 싶었다. 깨어나면 내 방 이불 속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하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사수대들은 다시 건물 로비로 내려와 줄을 맞춰 앉았다. 누군가 건물 바깥에 쌓아둔 나무 책걸상에 불을 질러 엄청난 열기가 밀려들어왔다. 불에 타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어찌어찌 해서 연세대학교를 빠져 나왔다. 운이 좋았다. 종합관 강의실로 올라가 학교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아는 간부가 누구든 나가서 밖의 동태를 보고 오지 않겠냐고 했다. 겁이 없는 편이 아니었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후배 한 명을 끌고 나갔다. 종합관 뒤는 야산이었다. 그 곳에서 한동안 다른 사수대들과 함께 전경들과 싸웠다. 그러다 전경들에게 밀리면서 우연히 야산 옆 담을 넘었다. 그 곳에는 학교와 학교 밖 주택가 사이의 빈 공간이 있었다. 거기엔 나처럼 싸우다 담을 넘은 사수대 이 십 여명쯤이 숨어 있었다. 우리는 하룻밤을 죽은 듯 숨어 버틴 후에 겨우겨우 빠져나왔다. 그 공간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잡혀갔을 텐데 천우신조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었다. 그날 밤 건물을 포위한 전경들은 밤새 노래를 불러대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들킬까봐 말 한 마디 할 수 없었다. 갇혀버린 학우들을 구하러 가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살다 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학교 밖으로 나왔더니 그새 우리는 뉴스 1면을 도배하는 폭도가 되어 있었다. 연희동 주민들은 거지꼴로 조심조심 연세대 뒷산을 빠져나가는 우리를 손가락질하며 욕했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었는데 학교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며칠 뒤 연세대학교에 갇혀 있던 다른 학생들이 끌려나오는 모습을 TV로 지켜보아야 했다. 그게 나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수많은 학생 활동가들이 구속되었고, 학생운동은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한총련은 그 후로도 줄기차게 싸웠고, 누군가는 연세대 항쟁이라고 불렀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패했고 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연세대학교 종합관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폐허가 되어 버렸다. 내 마음에도 구멍이 숭숭 뚫려버렸다. 한동안 신촌에 가는 일도, 연세대학교를 걷는 일도 모두 쉽지 않았다. 1991년 5월보다 1996년 여름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더 드물었다. 물론 항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전혀 공감할 수 없었고 자꾸 화가 났다. 그해 여름은 술자리 무용담으로도 꺼낼 수 없었다. 아무도 공개적으로 1996년 여름의 연세대학교를 말하지 않았다. 그 해 여름은 연세대학교 안팎에 있었던 수 만 명의 학생들에게 무덤처럼 묻혀버렸다. 단 며칠 동안 벌어진 일이지만 사건의 그림자는 길었다. 스스로 자랑스러워 할 수 없고 다시 말하고 싶지 않은 사건은 완전히 봉인되어 버렸다. 그 사이 24년이 지나갔다. 지나고 보면 시간은 언제나 빨랐고 기억은 모래성처럼 부서지기 일쑤였다.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 이따금 서울 연세대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널 때, 그리고 연세대학교 건물 사이를 걸을 때면 그 때의 내가 나의 어깨를 두드리곤 했다. 의도적으로 떠올리는 것인지, 저절로 떠오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학교의 풍경이 달라지고, 내가 달라지고, 동행한 사람도 달라졌지만 함께 말하지 못하고 함께 불러내지 못하는 기억은 유령처럼 예고 없이 나타났다. 그 기억 때문에 못 살 정도는 아니었다. 그 곳을 지나지 않거나 8 15 즈음이 아니면 아무렇지 않았다. 이것이 트라우마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기억하고 생각 하면 번번이 마음이 쓰리고 힘들었다. 억울했고 아팠고 화가 났다. 그 때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으며, 내 마음이 어떤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면, 다른 이들은 어땠는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기억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 과정이 생략되어 버린 사건은 캄캄한 어둠, 혹은 뿌연 안개 속의 미궁처럼 멈춰버렸다. 한 번 사로잡히면 한동안 헤어 나올 수 없었지만, 그 때 그 곳에 있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설명하기 불가능했다. 그저 혼자 감당하는 수밖에 없었다.기억과 공동체생각해보면 이런 기억들이 한 둘이 아닐 것이었다. 이런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기억이건, 해방 전후의 기억이건, 한국전쟁의 기억이건 요동치는 한국 현대사는 불시에 사람들을 급습했으니까. 알고 당하기도 했고 모르고 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요동치는 역사 앞에서 사람들은 불가항력처럼 어떤 기억들을 짊어져야 했다. 하지만 어떤 기억들은 오래도록 말할 수 없었다. 말하면 일상이 무너지는 세월이 너무 길었다. 국가가 나서서 막는 일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오래도록 스스로 입을 닫았다. 어머니는 지금도 내가 잡혀갈까 걱정하실 정도다.세상이 좋아진다는 것은 기억을 두려움 없이 꺼낼 수 있게 되는 일이다. 이 말을 하면 잡혀가지 않을까, 피해를 입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되는 일이다. 그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고 들어주는 일이고, 그 기억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이다. 눈물을 닦을 수 있게 해주고 등을 두드리며 다독여주는 일이다. 한국전쟁처럼 거대한 사건만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강렬한 무늬를 남긴 일들을 이야기 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하는 사회, 누군가 사과하거나 책임져야 한다면 미안하다 말하고 책임지는 사회여야 같이 사는 사회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이 공동체였다.내가 1991년 봄과 1996년 여름을 잊지 못하지만 말하기 힘들었던 것처럼 누군가는 다른 사건의 기억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종군 위안부의 기억일 수도 있고, 한국전쟁 양민학살의 기억일 수도 있다. 이제야 용기를 내 이야기 하고 재판을 청구하는 간첩조작사건이나 강제수용소의 기억도 많지 않나. 물론 내가 다른 사건의 경험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그들의 기억에 완전히 다가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내가 경험한 어떤 사건들은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없는 기억에 대해,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슬프고 억울하고 화가 나고 답답한 마음에 공감하게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고민하며 옷깃을 여미게 한다. 덕분에 한 사람을 이해하고 역사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그들과 내가 함께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기억 사이에 불씨처럼 남은 다른 사건들의 개별적 기억들은 누구도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려준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역사가 정면으로 관통할 수 있다고 일러준다. 의지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우연일 수 있다고, 그것이 역사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가르쳐준다.개인에게 맡겨둘 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된다. 기억을 나누고 기억으로 연대할 때, 우리는 잠시 공동체가 된다. 공동체를 만든다. 기억의 공동체가 많은 사회, 그 공동체가 다른 이들에게도 열려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닐까. 역사는 때로 나에게도 상처를 남겼지만 그 상처 덕분에 다른 이들의 상처와 눈물 자국이 잘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내 기억을 말하면서도 눈은 다른 이들의 상처와 눈물 자국을 향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이들이 말할 때 잠시라도 걸음을 멈췄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질문하고 함께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모르겠고 아직도 모르겠는 일들이 너무 많지만, 말하고 듣다보면 버틸 수 있고 언젠가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작성일 2026.01.14 작성자 노둣돌 조회 20 일상에서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평화실천 1.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화성지역에서 활동하는 평화실천가입니다. 저는 오늘 지역의 평화실천가 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먼저 평화 하면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나 낱말이 떠오르시나요? 2년 전 통일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첫 번째가 비둘기이고, 이어서 통일이 나왔답니다. 비둘기는 아마 올림픽이나 국제경기에서 예전에 보여준 상징인 것 같습니다.그리고 사회에서 우리가 평화라는 낱말을 가장 많이 듣고 사용하는 분야는 아마 남북 간의 평화일 것입니다. 평화체제 평화선언 등을 자주 사용하지요. 이때 평화란 국가 간 전쟁 에 대한 반대를 의미합니다. 현재 남북은 아직 종전이 안 된 채 전쟁을 잠시 멈춘 상태만을 유지하는 것이고, 이러한 유지를 peacekeeping 이라고 합니다. 유엔평화유지군이라고 들어보셨지요? 유엔평화유지군은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분쟁지역에 들어가서 무력으로라고 제압해서 양측의 충돌을 멈추게 하고, 그 후 분쟁 중단상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무력으로 제압하여 멈추게 하는 행위를 peacemaking, 그 후 충돌중단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peacekeeping이라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반도의 남북관계는 잠정적으로만 무력충돌이 멈추어진 위태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그럼, 지역에서 평화활동을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국가 간 전쟁반대 또는 분쟁을 멈추게 하는 것은 얼핏 보면 우리 지역의 일상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지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비둘기를 돌보자는 것도 아닐 것이고요.지역이란 우리의 일상과 관련됩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학교, 마을, 직장, 그리고 가정의 공간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일상에서 평화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흔히 이웃사이에 평화라고 하면, 뭔가 잘못되어서 고칠 일이 있어도 좋은 게 좋은 거 라고 하면서 참고 넘어가는 것, 그저 사이좋게만 지내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또는 마음의 평화만이 최고라면서 일상에서 겪는 여러 어려움들을 피해서 고요한 산으로, 들로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이러한 생각들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지만 협소하고 부분적인 이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일상에서의 평화활동이란 무엇이고 지역의 평화활동가란 무슨 활동을 하는 사람인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또한 평화활동가란 것이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기에 오늘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도 일상에서 평화실천가가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편안히 나누겠습니다.2.평화는 무엇보다 서로의 관계 사이에 작동하는 힘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평화활동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 그리고 조직이나 구조, 언어, 제도와 문화가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힘을 작동시키고 영향을 미치는지 그 현상과 방식, 원인을 탐구합니다.예를 들면 힘센 사람이 다른 사람을 때리는 것은 물리적 폭력입니다. 교사가 학생을, 어른이 어린이를, 상사가 부하를, 남성이 여성을, 또 청소년 중에 일진이 다른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힘을 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사회에서는 경찰이 더 큰 힘으로 개입하여 폭력을 중단시키고 이후의 사법과정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도나 규칙이 사람에게 작동하는 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호등 체계나 교통법규가 있습니다. 이것도 사람들에게 강제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세 번째는 언어나 문화가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서울지방 의 말을 남한사회의 표준어로 삼을 경우, 다른 지방어 사용자들은 자신의 지방어와 함께 서울지방어를 배워야합니다. 말과 글이 크게 분리되는 이중언어 사용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어떤 면에서 서울지방의 힘이 다른지방에게 가하는 힘의 작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조금 더 생각해보면, 내가 나 자신에게 가하는 힘도 있습니다. 스스로 채찍질하여 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한다며 자신을 추동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 전에 자기검열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갖는 죄책감도 어떤 면에서는 내가 나 자신에게 힘을 가하는 방식입니다.이처럼 나를 둘러싸고 일상에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힘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때 그 힘의 작동을 탐구하여서 그 방식이 왜곡되어 사람을 제압하거나 장악하고 지배 통제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힘은 폭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위협이나 혐오, 차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위계로 작동하기도 합니다.이때 그 힘의 작동방식을 탐구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전환시키는 활동을 평화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단과 집단, 나와 타인, 그리고 나와 나 자신의 이러한 차원들은 각각 고유한 차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상호의존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 면에서 평화운동은 매우 통전적인 운동입니다.이러한 상호적 힘의 작동 방식이 서로를 보호하면서 건강하게 상호주체적으로 균형이 잡혀있을 때, 이러한 상태를 기독교성서에서는 히브리어로 샬롬 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평화운동은 힘 자체를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이 어떤 형태도 존재하고 작동하는지에 주목하고 왜곡된 힘의 작동을 멈추게 하고 전환시키며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촉진하는 것이 모두 평화운동, 평화실천과 관계되는 일입니다.한자로 평화의 화(和)는 쌀 미(米), 입 구(口)을 합한 글자로서, 쌀이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주어지는 것이 평화(平和)라도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바로 누군가의 권력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표현입니다.제가 소속되어 활동하는 단체는 그물코평화연구소입니다. 그물코 란 우리말로서, 모든 사람과 사물들이 서로 그물처럼 이어져있는 관계를 나타내며, 그 가운데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은 모두 그 그물을 엮어가는 한 코 한 코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서로의 코들이 이어져서 서로를 붙들어주는 그물망, 안전망, 상호 관계망이 된다는 의미도 갖구요. 우리는 모두 서로가 연결된 그물망의 관계로서 서로를 적정히 잡아당기는 힘이 잘 조정될 때 서로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물코평화란 샬롬의 우리말 번역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그물코평화연구소에서 주목하고 실천하는 주요 주제는 의사소통, 의사결정, 갈등전환,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한 공동체구축의 네 가지입니다.1) 의사소통여러분은 참으로 자유롭고 명료하게 나의 느낌이나 내가 진짜 바라는 바를 잘 표현하고 전달하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 눈치 보느라 내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꺼려진 경험은 없습니까?사전에 내가 스스로 검열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마음을 먼저 눌러본 경험은 우리 모두가 겪어본 일들일 것입니다. 여럿이 식당에 가서 메뉴를 시키면서도 동료들이나 상사의 눈치를 보곤 합니다. 학교 교실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수업 받은 내용을 잘 모른다고 말하면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선생님은 나를 뭐라고 말할까 하는 생각들이 우리를 사로잡고, 이러한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스스로 외부의 시선, 사회적 압력에 길들여집니다.교육학에서 숨겨진 커리큘럼 (hidden curriculum)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드러난 커리큘럼은 1학기에 방정식을 배우고 2학기에 그래프를 배운다는 것과 같은 교육과정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학 수업을 경험하면서, 나도 모르게 몸 깊숙이 배우는 것은 수학은 어렵다 나는 무능력자다 이걸 모른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무시할까 같은 결과물입니다. 우리가 적어도 중고등학교 6년의 수학과목을 배우면서 정작 남는 것은 함수, 미적분이 아니라, 이러한 자기평가가 몸에 새겨진다는 것입니다. 강압적인 교실의 시간들을 지나 결국 익히고 배워진 것은, 나의 느낌과 바람, 나의 상태를 정직하게 표현하면 손가락질당하고 무시당하니 잘 감추고 적당히 아는 척하며 살아야 한다, 이런 게 인생이라는 것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나의 속마음은 너무도 깊이 숨어버려서,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게 되고 진정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도 잊고 살게 되는 것이지요.이렇게 자기검열이 작동되고 많은 사회적 시선과 압력에 눌려있으면 다른 사람의 진심도 잘 듣기 어렵습니다. 우선은 내 생각이 가득하니 다른 사람의 진심이 들리지 않습니다. 내 안에 빈자리가 있어야 그 자리로 다른 사람의 말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것은, 저 사람은 말을 저렇게 해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야 , 저 사람은 나처럼 눈치 보느라 이렇게 말 하는 거지 실제 마음은 다를 거야 라면서 오해와 추측만 자꾸 생겨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서로 간에 진심어린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여러분은 자신의 느낌과 바람을 명료하고 담백하게, 자유롭고 편안하게 표현하고 계시나요?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그대로 잘 듣고 이해하며 사시나요? 내 느낌과 바람을 명료하고 품위 있게 표현하고 상대의 느낌과 바람을 경청하는 것, 이러한 의사소통을 평화적인 대화 공감대화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평화로운 대화가 가능하도록 지지받고 격려하고 연습하는 공간을 안전한 공간 이라고 부릅니다. 정직하고 용기 있는 자기표현과 진심어린 경청은 안전한 공간 에서 가능합니다. 선입견 가운데 부당한 평가와 비난, 공격과 무시가 예견되는 공간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이러한 불안은 정직하고 평화로운 의사소통을 방해합니다.지역에서 대안교육은 이러한 반성과 성찰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대안학교 그물코학교는 이와 같은 안전한 학습공간을 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역의 공론장, 회의장소의 기초는 안전한 공간을 구성하는 것과 직결됩니다.2) 의사결정우리는 대부분 평화로운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도 자유롭고 민주적인 의사소통에 기초한 합의와 결정이 잘 이루어지지 못합니다.의사결정이란, 간단히 말하면 회의를 통한 결정입니다. 집에서 이번 휴가를 어디로 갈지 가족회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4명의 가족이 있다고 치면, 가족 모두가 동등하게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왜 그곳을 가고 싶은지 등을 이야기하고 들으면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이 우선입니다. 사실 어디를 간들 어떻습니까? 가족여행의 목적은 온 가족이 함께 즐겁게 지내자는 것이지 반드시 그 목적지에 가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니까요.그러므로 가족여행으로 어디를 갈지를 서로 이야기 나누는 과정부터 이미 즐거운 시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를 말하면 아빠가 싫어할 거야, 저기를 가자고 하면 엄마가 서운해할거야, 하지만 나는 진짜 거기 가기 싫은데,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대화한다면 상호신뢰 속에서 이루어지는 즐거운 대화는 어렵습니다. 또는 반대로 무조건 여기를 가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아, 한다면 가족여행의 의미는 이미 사라지고 주어진 명령에 복종하러 가는 고역의 시간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아주 단순한 가족여행회의에도 이렇게 깊은 메커니즘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을이나 사회의 여러 모임들, 그리고 직장에서의 회의는 어떻겠습니까?여러분들은 회의의 경험이 어떻습니까? 우리 마을에는 다양한 회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동돌봄지원금 대상을 동네에 사는 외국인 자녀들에게도 지급해야 하는지? 비등록외국인도 코로나방역마스크를 공급해야 되는 것인지? 마을 앞산을 뚫는 터널이 꼭 필요한지, 우회도로를 만드는 게 더 좋은 것인지? 모두에게 꼭 필요한 폐기물매립장은 어디에 세워야하는지? 우리 마을에서 이야기 나누고 결정해야할 의제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러한 의제들은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이때 힘을 가진 특정 소수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평화로운 의사소통에 기초하여 토의하고 또 생각하고 학습하는 숙의과정을 거쳐서 공동의 합의를 이루어내는 과정이 의사결정의 과정입니다.의사표현과 의사결정의 과정을 이해하고 연습하는 것은 민주시민교육의 시작이자 핵심훈련과정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제도나 규칙보다 훨씬 더 심오한 민주주의의 실현과 관련됩니다. 그래서 미국에 초기 민주주의를 소개한 토크빌은 민주주의는 정치체제를 넘어서서 습속 이라고 하였습니다.우리는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공동의 의사표현을 한 소중한 민주주의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 결과 불의한 대통령을 탄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도 경험합니다. 대통령 한사람 바뀐다고 우리 일상이 진짜 자유롭고 평화롭고 민주적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광장정치 광장의 촛불을 일상의 민주주의로 이어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배우고 연습하고 서로 격려하는 훈련장이 마을 곳곳에 세워져야 합니다. 힘 있는 경찰이나 높은 사람이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이야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들으면서 생각하고 합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공론장이라고 부릅니다. 역시 제도를 넘어서서 마을, 학교, 가정에서 실현되도록, 습속으로 이어지도록 연습하고 도와야 합니다.화성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는 마을에 작은 공론장들을 만들어가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마을의 의제들을 직접 선정하고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7-8명 정도면 충분합니다. 작은 도서관들이 이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화성에는 약200여개의 작은 도서관이 있고 그 외에도 마을 만들기 소모임, 도시재생모임, 시민단체 등 많은 모임이 있습니다. 이 모임들이 자신들의 의제를 발굴하고 토의하고 논의합니다. 공동의 의제가 있으면 함께 모여서 이야기하고 공동의 의사표현을 합니다. 여기에 지역 언론들도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회의를 한다는 것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솔직한 마음을 듣는다는 것이고, 공동으로 결정된 사항에 대해 함께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소수가 결정하고 소수가 진행하는 것은 다수가 소외되고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그 결정이 다수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에 그러한 결정이 공동의 결정이 되도록 해야만 합니다.3) 갈등전환그런데 이런 회의를 배우고 시도해보면, 처음에는 우리가 결정하니 참 좋다, 재미있다 하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옛날처럼 힘 있는 사람이나 전문가가 결정 하는 게 낫겠어 라는 말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야기과정에서 갈등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힘 있는 사람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때는 몰랐는데, 이제 자유롭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의견의 차이가 드러나고, 그 차이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특히 마을회의는 빠른 결정 만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정은 되었는데 사람들이 다 떠나고 없다면 누구하고 일을 합니까? 마을을 위하자고 일을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갈등만 생긴다면 안하느니만 못한 것이지요.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정상적이고 당연한 과정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삶을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이끄는 훌륭한 계기가 될 수 있으니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부분 갈등이 일어나면 3F로 반응한답니다. 첫째는 Fighting 정면대결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려는 것입니다. 이때 힘이란 물리적 힘도 있지만 지식으로, 소위 말발로, 나이로, 성별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태도가 있습니다. 둘째는 Flight 회피와 도망입니다. 갈등이 일어나면 외면하고 다른 사안으로 도망가는 것입니다. 엄연히 갈등이 나타난 상황인데도 갈등이 없는 척하고 다른 이야기만 합니다. 그래서 갈등에 직면하고 주목하고 갈등을 전환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세 번째는 Frozen 무반응 겨울잠입니다. 갈등 자체가 무섭고 상대가 나를 제압할 것이 무서워서 그 자리에서 그냥 얼어붙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마음은 어떨까요? 내가 힘만 있다면 그놈을 짓밟을 텐데 하면서 복수심에 불탑니다. 또는 스스로 무능함을 자책하고 한탄합니다. 겉으로는 무반응이라 평화로운 상태로 보일지 모르지만, 무력충돌 직전의 폭력적 위기상황일수도 있습니다.평화운동에서 갈등전환은, 상대를 제압당하거나 외면하는 방식이 아닌, 억울한 마음에 복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외의 다른 길을 탐구하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 갈등을 통해 우리가 서로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때 갈등은 나와 상대의 진심을 이해하고 배우는 과정이며, 서로의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함께 서있는 공동의 토대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다른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의사표현을 통해 우선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같다면 우리는 대화의 필요가 없습니다. 한사람이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실천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이것이 대 전제입니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 다른 부분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한 우리는 동일한 면, 일치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모든 것이 다르면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최소한 우리는 한국어를 사용해서 소통이 가능합니다. 최소한 우리는 여행을 가면 즐겁고 좋다는 동일함이 있습니다.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선한 마음도 있습니다.갈등은 당연하다. 갈등은 언제나 일어난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이 갈등을 통해 서로의 같음과 다름을 배우고,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공통의 토대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갈등은 새로운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을 일으킵니다.최근 경찰청에서는 각 지역마다 민간위원들을 위촉하여 경찰과 민간위원이 함께 회복적 경찰활동 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경찰의 강제력만으로 일상의 갈등이나 폭력을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갈등전환전문가인 민간위원들과 협력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주차문제는 이웃 사이의 문제입니다. 상대가 잘못하여 구속하거나 벌금형을 받는다고 해서 그 이웃과의 갈등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이후에는 앙갚음을 하려 할 수 있고 더 갈등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다른 조치 없는 처벌만으로는 갈등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웃 간의 소음분쟁이나 청소년 학생들 사이의 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폭력을 다루는 방식에서 평화교육에 기초하는 갈등전환을 도입하여 확장하고 있습니다. 마을에서나 직장에서도 안전한 공간과 회의, 그리고 갈등전환의 인식이 생기고 평화실천이 확산하기를 바랍니다.지금까지 말씀드린 일상의 평화활동, 평화실천가가 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흔히 이러한 기술을 적정기술 이라고 부릅니다. 제 생각에 자동차 운전 정도의 지식과 기술을 익히면 평화실천가로서의 출발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모두 전문가가 되어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작은 힘들이 우리의 평화를 만들고 민주주의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안전한 공간을 구성하는 것, 진심어린 의사소통을 연습하는 것, 회의의 기술과 갈등전환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을 평화의 공간으로 바꾸어 갈 것입니다.오세욱그물코평화연구소 대표청소년대안학교 그물코학교 교장화성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상임대표 작성일 2026.01.14 작성자 노둣돌 조회 5 성폭력과 성인지 감수성 한 유명 아이돌그룹이 신곡을 발표하며 내놓은 뮤직비디오가 노래나 작품성이 아닌 사회적 이슈로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에 몸에 밀착되는 짧은 치마유니폼을 입고 하이힐을 신은 모습의 간호사가 등장한 것을 두고 현실의 간호사 모습과 다르다, 간호사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키고 성적 대상화를 부추긴다 는 의견과 예술적 표현에 대한 지나친 검열이다 라는 의견이 기사마다 댓글 전쟁으로 번졌다. 해당 아이돌의 인기와 기획사의 대중에 대한 영향력과 파급력이 적지 않았고 이슈는 젠더와 폭력이었다.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기획사는 작품의 의도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우려 된다 고 했고, 간호사(보건의료노조)들은 간호사라는 전문 직업군에 대한 인식의 왜곡 을 우려했다. 기획사의 설명대로 가사에 충실하게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들을 도와줄 의료진 이 꼭 현실의 간호복을 입고 등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가사에 충실한 연출이라면 인물은 명백히 간호사이며 그 간호사가 짧고 타이트한 치마, 짙은 화장, 하이힐 등으로 상징되는 성적 대상의 이미지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해 보인다.사건은 보건의료노조의 성명과 그 요구를 수용한 기획사의 결정으로 종지부를 찍었지만 논란은 남았다. 간호사나 승무원이 현실의 모습과 다르게 지나치게 성적 대상화되어 매체에 등장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강산이 몇 번씩 변하도록 타이트한 유니폼의 간호사가 반복적으로 매체에 등장하는 일이 여전히 직장에서 성폭력 피해에 노출되는 위험성이 높은 직군으로 간호사가 꼽힌다는 사실, 일상의 간호 현장에서 간호사들이 갑질과 희롱, 추행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할 수 있을까?해당 뮤직비디오의 문제가 되는 장면이 공개되자마자 간호사들끼리의 익명 SNS게시판(대나무숲)에는 굉장히 불편하다,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봐야 하나, 한탄과 탄식이 나온다 는 호소가 쇄도했다는 소식이다.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서서 휴대폰 창을 들여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는 현실의 간호사를 떠올리니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진다. 이 탄식과 분노의 읊조림은, 자신의 직업적 전문성이 성애화된 이미지에 번번히 갇히고 마는 무력감, 자신이 누군가의 성적 욕망과 분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협이 주는 불안, 또 누군가에게는 이미 간호 현장에서 숱하게 겪어왔던 크고 작은 폭력피해의 재경험이 주는 신호 일지도 모른다.몇 해 전 치료실에서 만난 예비 간호사가 떠오른다. 간호학과를 다니며 공부가 고되기도 하고, 때로는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 방황하는 시간이 길기도 했다. 힘들게 필수 과정을 이수했지만 병동으로의 임상실습은 왠지 두려웠다. 긴장되던 실습 첫날 이 예비간호사는 수간호사선생님과 병동의 선배 간호사들 앞에서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면서 간호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의료인이라는 전문 직종에 한 발 다가선 느낌에 전율을 느끼고 병동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에 자신이 기여할 수 있음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날 상냥한 미소로 병실에 들어갔다가 예쁜 아가씨가 왔다 며 엉덩이를 더듬는 남자 환자의 추행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했다. 그 날 이후 이 예비간호사는 상냥했던 자신의 미소를 자책하면서 자신의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고 피해 상황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고통에 시달리다 다시 병동의 실습생으로 돌아가기까지 6개월여의 시간이 걸렸다.특정 직군에 대해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왜곡된 표현은 해당 직군의 종사자들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터부시와 성적으로 대상화된 표현들은 해당 여성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겪는 폭력의 피해에 어떤 방식으로든 일조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폭력의 알고리즘에 일조하지 않으려면 일상에 만연한 차별이나 혐오를 알아차리고 이에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현재 필자는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코로나 시대의 초등학생을 돌보며 때때로 강의를 하고 글도 쓰고 심리학적 이론을 내세워 아동의 문제행동을 진단하거나 양육에 훈수 두는 일을 주로 하지만 필자의 본업, 요샛말로 직업적 본캐(本+character) 는 성폭력 피해 아동 청소년 지원기관의 임상심리사이다. 성폭력 피해를 입고 찾아오는 아이들을 만나 피해 후유증상을 평가하고 치료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필자의 직업을 묻는 사람들에게도 이처럼 대답하면 주로 돌아오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이다. 눈을 휘둥그레 뜨며 성폭력 피해 아이들이요? 라고 놀라거나, 미간을 찌푸린 채 슬픈 표정으로 그렇게 어려운 아이들을 만나다니 와 같은 경외의 말들을 내뱉거나.전자의 놀라는 반응은 성폭력 피해 아이들이 있어요? 혹은 아동 성폭력이 진짜 있어요? 와 같은 순진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폭력에 노출되고 있으며 여성과 아이들을 향한 다양한 혐오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는 혹은 모른 척 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방임과 방관, 부인(denial)이라는 이름의 폭력이 될 수 있다. 실제 성폭력 피해를 입은 많은 아이들은 자신이 피해를 처음 보고한 이들에게서 그 말이 사실인지 의심하는 첫 반응에 큰 상처를 입고 피해사실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면서 자책감을 느끼기도 한다.그러면, 피해자에 대한 혹은 피해자를 만나는 치료자에 대한 공감어린 시선처럼 들리는 두 번째 유형의 반응 그렇게 어려운 아이들을 만나다니 는 어떨까. 대학원 수업시간에 있던 일이다. 상담의 첫 회기에 내담자와의 관계 맺기 라는 주제로 의견을 나누는데 한 후배가 이야기한다. 성폭력 피해자인 내담자를 만난다면 너무 어려울 것 같아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힘들 텐데 치료자가 경험해보지 못한 큰 슬픔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공감할 수 있을까요? 초보 상담자의 기술적 미숙함 등은 차치하고, 이 따뜻하고 성실한 심리학도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그 자신 안의 피해다움 에 대한 고정관념이었다. 여간해서는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는 말들은 오랫동안 피해자들로 하여금 피해 사실로부터의 수치심과 자책감을 강요하고 침묵을 유지하게 했다. 자신의 경험과 고통을 이루 말 할 수 있었던 용기 있는 피해자는 그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피해자다운 모습과 행동은 비단 피해 이후에 나타나는 모습에 국한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성별이나 연령과 같은 인구학적 특징이나 개인의 성격적 특성 등은 때로 피해 사실 자체를 의심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모 대학원 내의 성폭력 사건을 보자. 교수들의 미흡한 대처와 학교 당국의 미진한 대응 등이 도마에 오르내리며 지난 2년여 사이 몇 차례 세간을 뜨겁게 달구었던 사건이다. 당시 공방 끝에 가해자의 무죄가 선고되자 학교 이미지실추를 탓하며 피해학생을 무고죄로 고발한 어느 교수의 고발문에는 피해자가 사건이 발생하고 3개월이 넘은 시점에 신고한 점, 피해자가 원래부터 원우들과 술을 자주 마셨으며 가해자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 성격이 강하다는 점 등을 들어 사건 발생의 가능성을 의심하는 내용이 담겼다. 법 꽤나 안다는 교수의 이러한 입장을 보고 있자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성폭력 대한 오해, 고정된 관념과 편견이 피해자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2차 가해가 될 수 있음을 보았다. 피해자다움 을 규정한 후 이를 공감하고 치유하겠다고 다짐했던 후배의 예처럼 선의(善意)는 2차 가해를 예방할 수 없다. 성폭력 사건을 대함에 있어 더 이상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으면서 사건의 본질을 좀 더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은 바로 성인지 감수성 이다.성인지 감수성이란 성별간의 불균형을 이해하고 필요한 지식을 갖추어 일상생활 속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말한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서는 가해자 중심의 주장이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해해야 한다는 취지를 뜻한다. 수행비서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 충남지사의 사례나 최근 보도되는 스포츠계 성폭력 사건, 스쿨미투사건에서와 같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위계가 존재하는 성폭력 사건들에서 가해자 무죄의 원심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자주 인용되는 근거가 이 성인지 감수성이다.한 여자 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에 의한 신체추행 사건이 발생하였다. 애초에 피해를 호소했던 학생들은 열 네 명이었으나 정작 수사과정에 적극적으로 응한 학생은 두 명에 그쳤다. 이 사실은 원심에서 판사로 하여금 사건을 가벼이 여겨 무죄를 선고하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2심에서는 해석이 달랐다. 다수의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하지 못한 것을 두고 피해 여학생들과 그 부모들이 스승인 피고인으로부터 당한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학교내외의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와 정신적 피해,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 을 감안했고, 수사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없었던 12명도 사건 피해에서 간과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수평적일 수 없는 관계에서 가해자의 주장이 객관적 사실이라 할지라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재구성하고 맥락을 파악하려는 시도가 더해져야 사건의 양면,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피해자의 입장에서, 상대 성별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한다는 기본적인 원리에서 성인지 감수성은 공감능력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경험과 다른 사람의 입장을 동등한 무게로 다루고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타인을 통해 이해받는 경험이 중요하다. 아이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방법으로는 그래서 부모가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것 만큼 좋은 것이 없다.성인지 감수성의 또 다른 필요요소, 차별적 성문화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성과 젠더, 차별과 차이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해야한다. 남성과 여성을 생물학적으로 구성하는 성(sex)과 달리 젠더(gender)는 남성성과 여성성과 같이 성역할에 대한 인식을 포함한 사회적인 의미의 성을 말한다.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인 차이 때문에 생겨난 구분이 성차이라면, 이 성차이로 인해 여성과 남성에 대해 생기는 편견, 이 편견으로 발생하는 차별이 성차별이다. 사춘기 이후의 남성과 여성은 신체조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개인차가 있지만 일반적인 경우 남성이 더 근력이 잘 발달한다. 체력조건을 선발기준으로 삼는 채용과정에서 남자 응시자와 여자 응시자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은 이 생물학적인 신체조건인 성차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확실히 남자들이 원래부터 근성이 있고 성실한데 여자들은 원래 나약하고 끈기가 없어 라고 한다면 이는 성차별이 되겠다.일상에 만연해있는 성차별적 언행이나 성별 고정관념, 나아가 성별과 성역할 뿐 아니라 곳곳에 숨어 있는 차별이나 혐오의 요소를 감지하고 잘 구별할 수 있는 레이더가 필요하다. 성별, 장애의 여부, 나이, 직업, 신체조건 등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차별지어지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 주로 어떻게 표현되는지 찾아보고 불편한 표현이 있다면 고쳐 써야한다. 루저 , 안경뚱 과 같이 외모를 지적하거나 눈뜬장님 같은 장애를 비하하는 표현에 불편감을 느낄 수 있어야하며 불쾌함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차별에 동화되기는 쉽지만 저항은 어렵다. 저항을 위한 가장 첫 번째 과정은 내가 차별에 동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새로운 시도를 해 보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늘어놓는 외모 지적질을 그만하라 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 사이에 , 웃으라고 한 말에 뭘 그렇게 정색 하냐고 한다면 따라서 웃어넘기지 말고, 그런 차별적인 표현에 나는 웃을 수 없다 고 말해보자. 작성일 2026.01.14 작성자 염승희: 광주해바라기센터 조회 6 경제문화공동체 더함과 ‘더불어 함께’ 1. (사) 경제문화공동체 더함은더불어 함께 할 때 더 큰 가치가 있습니다.2003년 처음 문을 연 사단법인 경제문화공동체 더함은 「경제주체 개인 바로서기」를 목표로 하였다. 개인은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로써 존재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공동체 안에 존재할 때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취지로 더함은 대중강좌, 인문학강좌 및 시민경제교육을 실시하였으며, 각종 경제문화보고서 발간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개인이 온전한 주체로 설 수 있는 경제문화공동체를 만들고자 노력하였다.더함은 꾸준한 활동을 통해 지역민과 지역공동체 내에서 인지도가 높아졌고 전문성을 인정받았으며, 이러한 결과로 2011년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았고, 2017년에는 광주광역시로부터 일가정양립지원 사업을 위탁받아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또한 대안경제의 실험, 도시재생과 사회적경제 연구, 기본소득과 청년정책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세미나 및 포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제문화공동체 더함이 걸어온 길2003년 경제문화공동체 조직2004년 03월 경제문화공동체 경제교육모임 시작2009년 01월 (사)광주경제문화공동체 창립(비영리법인 등록, 광주광역시 제2009-01호)2009년 05월 광주발전연구원(현 광주전남연구원)과 경제교육 업무협약 체결2010년 11월 (사)경제문화공동체 더함으로 법인명 변경2011년 07월 사회적기업(고용노동부 제2011-051호) 인증2012년 07월 광주광역시북구청, 말바우시장상인회 업무협약(2012.07)2012년 08월 광주대학교 LINC사업단 산학협력 협약(2012.08)2013년 02월 ~ 2015년 2월 광주광역시 북구협동조합지원센터 운영2016년 06월 더함 경제문화연구소 설립2016년 10월 여성친화일촌기업 협약(광주광역시 일가정양립지원본부 여성새로일하기센터)2017년 06월 ~ 현재 워킹맘 청년여성멘토링사업 운영(광주광역시)2019년 06월 북더함 출판사 설립(북구청 제2019-16호)2. 지역과 함께하는 소통의 장 마련경제문화공동체 더함은 지역민과의 소통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이어왔다. 특히 지역 내 활동가 및 연구자 네트워크를 조직 및 발굴하고 지역민들과의 소통의 통로인 지역 인문학 강좌, 경제강좌 등을 꾸준히 개최하였다.2009년 09월 인문학 강좌_ 노동, 돌봄, 교육2009년 11월 인문학 강좌_ 우리시대에 놓쳐서는 안될 6가지 테마2010년 03월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만남2010년 09월 경제강좌 경제위기의 진실은 무엇인가 2010년 10월 광주시민과 함께하는 가을 인문학 산책2010년 12월 ~ 2011년 3월 광주시민 및 대학생을 위한 경제금융강좌(총 21회)2011년 05월 ~ 2011년 11월 대학생 및 일반시민을 위한 경제교육(총 51회)2012년 04월 인문학 강좌_ 다중지성과 철학 산책2013년 04월 경제강좌_ 돈을 알면 자본주의가 보인다2014년 04월 ~ 12월 시문경제강좌(총 12회)2016년 경제문화공동체 더함은 부설연구소인 경제문화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지역과 함께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기존 더함의 방향성이 인문강좌 및 경제강좌 개설을 통한 지역민과의 소통이었다면, 한 걸을 더 나아가 인문, 사회, 경영, 공학 등 지역 내 다양한 전공의 석박사급 연구원이 연합하여 지역 생활 전반에 관한 다양한 정책을 논의하고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였다. 이를 위해 최근 공동체와 관련한 이슈인 사회적 경제, 공유경제 및 도시재생 등을 연계하여 세미나를 실시하였으며, 세미나는 새롭게 조직된 분야별 석박사급 연구원과 참여를 원하는 시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더함 정례세미나 주제: 사회적경제와 도시재생 2016.12 ~ 2017.12 매주 목요일 총 24회 진행 참석자: 사회학, 법학, 문학, 철학, 정치학, 사학, 문헌정보학 박사 및 문화관련 전공자, 지역 기관 사무국장 등 더함 포럼 개최 2017년 09월(11~13일) 기본소득 강연회 2018년 01월 사회적 경제 활성화와 지역거버넌스 포럼3. 지역의 요구를 수용한 더함의 나아갈 길2019년 경제문화공동체 더함은 지역사회에서 더함의 역할에 대한 심층적인 고민을 하였다. 과거 예산군 의회 의원들의 행태 및 방송에서 나타나는 지방자치의원들의 행태를 돌아보며 지방자치제도가 진정한 민주주의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기초의원의 역할에 대한 문제의식을 인식하게 되었다. 25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국민의 의식수준이 향상되었기에, 중앙정부 주도형이 아닌 각 지방의 색깔에 맞는 실질적인 정책의 추진을 선호하게 되었다. 하지만 광주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 내 경제문화 정책을 발굴할 수 있는 기관이 매우 한정되어 있고 지역의 정책을 발굴하고 추진하기 위한 실질적인 기초데이터가 부족하여 지역에 적합한 정책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이에 더함에서는 2009년부터 다양한 강연을 통해 네트워크화된 지역민과, 2016년부터는 연구자를 중심으로 진행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지역공동체의 알권리를 충족하고 수요자의 요구에 맞는 맞춤형 정책대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경제문화공동체 더함 비전 및 목표경제문화공동체 더함은 2019년 지역공동체와 함께 성장하는 경제문화공동체 구현 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였다. 구체적인 목표로 지역밀착형 정책을 제공함으로써 모든 시민이 보편적(사회적) 삶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미래 사회 조성에 기여하고자 하며, 분야별 지역 동향 및 정책적 대안 제시를 통해 지역공동체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고자 한다. 또한 지역공공정책 연구플랫폼을 구축하여 지역 내 많은 연구자들이 지역분권 실현을 위한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그림 1] 경제문화공동체 비전 및 목표□ 더함 경제문화연구소더함 경제문화연구소는 기존의 연구진 네트워크를 확장하여 지역을 기반으로 한 미래지향적 경제문화공동체를 실현하고자 다양한 분야 연구자와 박사급 현장 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하여 전문위원 체제의 연구소를 새롭게 구성하였다. 경제 사회 문화 교육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지역의 현안과 미래의 변화 양상을 이론적인 부분 뿐만아니라 현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통해 지역에 적합한 정책적 대안을 제안하고자 하였다.이를 위한 첫 걸음으로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분야별 주요 이슈를 조망하고 동향을 분석함으로써 지역의 미래를 위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더함 포커스』를 발간하였다(2019년 9월 창간호). 『더함 포커스』는 지역민들에게는 지역의 현안과 쟁점에 대한 알권리를 제공하고, 지역 자치분권 실현의 최전선에 있는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의회에는 정책수립 및 실행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그림 2] 경제문화공동체 더함 포커스빈집의 발생과 양적성장 도시계획의 한계 대인 방안_ 광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윤희철사무국장주택가격 변동요인과 주거안정 대책_ 광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윤영선센터장광주지역 사회적기업 현황과 성과분석_ (사)경제공동체 더함 오창민대표광주형 일자리정책에 여성은 있는가_ 전남대학교 사회학과 김경례박사현재 더함 경제문화연구소 소속 전문위원은 사회학, 생활과학, 도시계획학, 평생교육학, 미술학, 경제학, 도시지역개발학, 법학, 부동산학, 문헌정보학, 행정학. 철학, 국어국문학 등 지역경제와 지역사회, 지역문화, 지역교육을 논할 수 있는 다양한 전문가가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융복합 시대에 인문학, 심리학, 공학, 의학 분야 전문위원을 추가로 선정하여 명실상부한 지역 정책연구자 네트워크를 실현하게 될 것이다.본 연구소에서는 전문적 연구자료 뿐만 아니라 지역민과 함께하는 자료출판을 위해 2019년 6월 북더함 출판사를 설립하였으며, 이를 통해 지역민이 쉽제 접할 수 있는 지역정책 단행본 및 정책 총서 등을 발간하여 수요자 맞춤형 정책 자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이다. 또한 지역 및 지역 간 네트워크를 확장해 나갈 것이며, 지역공동체 세미나 및 지역 연계 포럼 등을 개최하고, 지역의 미래인재육성을 위한 연구지원과 함께 지속가능한 지역 연구 및 정책개발을 위해 연구자 플랫폼을 구축하여 지역의 미래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연구할 것이다.4. 맺으며우리는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기술 환경 등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화는 삶의 양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하지만 독일의 극작가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는 모든 과거의 필연적인 산물이며 모든 미래의 필연적인 원인이다. 우리가 불안해하는 현재의 모습은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과거의 행위에 대한 결과물이며, 이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변화가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그 변화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현재의 변화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정치 경제 및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변화 속도는 얼마나 되며,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것인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미래란 모르는 자에겐 두려움이지만 아는 자에겐 즐거움이다. 라는 말이 있다. 지역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모든 것이 과거에 관한 것이지만 변화의 핵심을 하나하나 찾아감으로써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한 현실로 만들 수 있다. 4차산업과 융복합의 시대는 단일학문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다양한 연구자가 연합하고, 이론과 현장이 하나로 네트워크 될 때 가능하다. 더함은 이러한 네트워크를 통하여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정보제공을 목표로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작성일 2026.01.14 작성자 정대근(더함경제문화소장) 조회 6 독서모임의 경험 인문학 운동의 현주소 시민 인문학저의 최초의 인문학 활동의 경험은 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운동권의 세미나가 그것입니다. 저는 80년대 학생운동의 경험이 현재의 인문학 운동의 전사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현재의 상황과의 비교가 유용할 수도 있겠지요. 당시와 지금의 가장 큰 공통점은 당연히 계몽이라는 관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의식화 라고 말했습니다만, 결국 의식화란 계몽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정치의식화가 사회과학 서클들의 목표였습니다. 물론 학습-선전-조직으로 이어지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 이런 독서모임 혹은 세미나는 학생운동 조직의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그 내용이나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동질적인 모임 성원들, 위계적인 선후배 체계 하에서 이루어지는 반강제적인 학습 등의 요소가 세미나의 확산에 기여했을 것입니다. 조야한 학습의 내용은 정치적 목표의 시급함과 선명함으로 변명되었고 심지어는 보다 깊은 공부로 심화되는 것을 이론주의 라는 이름으로 경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운동권의 사회과학 독서모임들은 현재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인문학 운동 혹은 계몽 운동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의 인문학 운동은 대학이라는 장소와 결정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은 공장의 노동조합 교실이나 시민운동 사무실, 그리고 교회도 그런 영역에 속하기도 했지만 이것은 예외적이라고 말해야 하겠죠.저는 이런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인문학 운동에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혹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금의 인문학 운동에 관심을 보이는 다수가 학생운동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동시다발적인 다수의 독서 모임이 생겨난 원초적인 경험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물론 현재의 인문학 운동이 학생운동의 재탕이나 연장이라는 말은 전혀 아닙니다. 현재의 인문학 운동은 전혀 다른 상황과 조건들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 지향하는 바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현재 인문학 운동의 상황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권의 붕괴에 따른 학생운동의 쇠퇴, 아카데미즘의 장소로서의 대학의 권위 약화, 대학 교육의 직업교육화, 그리고 인문학의 위기 담론에 이르기까지. 이런 이야기들은 제가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럼에도 대학이 변화했다는 것, 여기서는 결정적으로 더 이상 인문학의 독점적 장소가 아니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시민 인문학 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건 간에, 그 이름이 말해주는 것 중에 하나는 학생 인문학 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계몽의 중심이 대학이나 학생들로부터, 그 전형성의 장소들의 밖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뜻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긍정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요소도 있겠지만, 이런 변화된 상황에서 대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바로 이 워크샵의 주제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시민 인문학 은 이런 변화된 상황이 강제하는 현단계 인문학의 주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런 변화의 구체적인 지점들을 전부 살펴 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거칠게 이렇게 질문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인문학 운동의 조건들은 더 나아졌는가 하고 말입니다.인문학의 르네상스라고 말합니다. 예전의 어두운 자취방에 갇혀 있던 인문학은 이제 백주를 활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백화점, 주민커뮤니티센터, 도서관과 시민대학에 이르기까지 인문학 강좌들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티비에서도 유명 강사들이 강연을 하고 인문학과 예능을 결합한 프로그램이 방영됩니다. 또한 트레바리라는 유료 독서모임 서비스가 이미 회원이 5천을 훨씬 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문학 운동이 계몽의 프로젝트 계몽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기서 다룰 수는 없습니다 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현재의 인문학이 이전의 의식화 운동의 단계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목표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치적인 의식화라는 보다 집중적이고 구체적인 목표에서 훨씬 더 포괄적이고 모호한 문화적인 실천으로 그 내용 또한 민주주의, 인권, 환경 등으로 훨씬 더 다양해졌습니다 변화되었다는 사실도 현단계 인문학의 실천을 어렵게 하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달라진 조건들, 그 중에서도 매체 환경 인터넷, 핸드폰, 디지털 미디어 이라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조건의 변화도 인문학에 우호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듭니다. 물론 새로운 디지털 인문학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인문학이라는 실천이 마지막에는 책이라는 매체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인정한다면 결국에는 인문학의 미래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위에서 이야기한 대학의 변화를 감안한다면, 인문학 운동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조건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다양한 목표를 시민들 이라는 개별적이고 느슨하고 모호한 주체들에게 떠맡기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인문학 강좌라는 형식인문학 활동과 관련해서 가장 전형적이고 대중적인 형식은 아무래도 인문학 강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외에 독서 모임, 세미나, 토론회 등의 형식도 있고 영화나 음악 미술 등의 다양한 장르를 활용하는 방식들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들이 대부분 학교 교육의 형태와 유사하다는 것은 인문학이 오랫동안 계몽과 교육의 장에서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문학 강좌가 유행하는 것은 그것이 이러한 계몽의 전형적인 모델이라는 점에도 있겠지만 또한 주체의 입장, 혹은 주최측의 입장에서 대중을 동원하기에 가장 쉽고 유용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독서모임은 참여자들에게 독서라는 부담을 지우는 일이고, 모임을 지속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저는 2011년부터 노대동에서 지역운동을 하는 분들과 연대해서 송화인문학당 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약 40여 회의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는데, 구성의 원칙이라는 게 있었다면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과 강사들 또한 광주 지역에서 찾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여기에도 한 번쯤은 강사로 오셨던 분들이 계십니다.이 활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강좌의 참여 인원이 20명이 넘었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참여자의 숫자가 성공과 실패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을 테고, 나름 의미 있는 실천이었다고 자평할 수도 있겠습니다.사실 제가 이 활동을 돌아보면서 가졌던 고민 중의 하나는 평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좋은 혹은 성공한 인문학 강좌는 어떤 것일까요? 물론 어떤 기준 혹은 관점을 채택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인문학 강좌를 대중 동원을 위한 하나의 행사라고 본다면, 당연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왔는가가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인문학 강좌들이 관의 지원과 관련되어 있는데, 그런 경우에 수량화할 수 있는 것들이 행정의 입장에서는 유일한 관심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훨씬 더 어려운 본질적인 질문들이 있습니다. 인문학이 최종심에서는 인간의 변화, 의식의 변화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평가의 문제는 대답하기가 극히 어렵습니다. 학교 교육과 비교해 보자면, 학교는 제도적인 평가의 틀을 갖고 있지만 인문학 교실에는 그런 방식을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그 강좌가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었다면, 그 강좌를 통해서 참여자들의 민주적 의식이 얼마나 고양되었는가 하고 질문할 수 있고, 여성주의에 대한 것이었다면, 가부장적인 의식이 얼마나 변화되었는가 하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은 대답하기 어렵고 수량화하기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때로는 양적인 평가와 질적인 평가가 상충되기도 합니다. 유명한 인문학 강사를 모시고 지역의 알만한 인사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인문학적 활동이었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제 경우에 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던 것은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강좌를 계속할 의미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 대중적인 반향을 얻지도 못했고, 지역 운동을 계속 이어갈 주체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지도 못했고, 다른 다양한 모임과 실천으로 예를 들어 학부모회, 취미 모임, 독서회 등 연결되지도 않았습니다. 특히나 주체 형성이라는 질문, 즉 이런 활동을 통해서 지역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의식이 높아졌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답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매월 반복되는 일회적인 행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이런 경험을 통해 인문학 강좌라는 형식의 한계를 깨달았습니다. 인문학 강좌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을 스타 강사에 대한 것이나 참여자가 아니라 관객을 양산한다는 여기서 반복하지는 않겠습니다. 저의 반성은 그 형식이 쓸모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강좌라는 행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살과 피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주체들의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모임 내지는 활동과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매주 모이는 독서 모임에서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달의 마지막 모임에서는 책의 저자나 관련이 있는 전문가를 모시고 강좌나 토론회를 개최하는 진일보한 형식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참여가 없는 계몽에는 한계가 있다고나 할까요.독서 모임의 경험결국 가장 고전적이고 단순한 인문학 활동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책을 읽는 것입니다. 여기서 읽기의 노동에 관해서나 함께 모여서 책을 읽는 방식의 장점에 관해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저 자신의 독서 모임의 경험에 대해서만 간단히 말해 보겠습니다.현재 제가 참여하고 있는 몇 개의 독서모임들이 있습니다. 갈매나무 소설읽기, 갈매나무 인문학, 노대동 강독모임, YMCA 독서모임, 평화학 공부모임이 진행중에 있습니다. 그 외에도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합수 낭독모임, 송화독서모임, 송화인문학당 등의 모임이 있었습니다.2010년 광주에 돌아온 이후 2011년 3월 카페 갈매나무 에서 세 사람이 모여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 를 읽은 것이 저의 광주에서의 첫 독서모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애매하게 말하는 것은 그 전에 몇 차례인가의 시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한두 차례의 모임으로 끝난 그 모임들의 실패 원인은 물론 가장 단순한 것입니다. 읽어 오기로 한 책을 읽어 온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아마 모든 독서모임들의 실패 원인 중 가장 압도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후 이 고질적인 문제, 사전 독서 없이는 독서 모임을 지속할 수 없다는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낭독 모임 혹은 강독 모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중단되었지만 약 3년 정도 지속되었던 합수낭독모임은 책을 통째로 낭독하는 모임이었고, 지금도 진행중인 노대동 모임은 발췌 강독 모임입니다. 물론 이런 모임의 장단점이 있습니다.어쨌든 갈매나무에서의 독서모임은 참여한 성원들의 자발성에 힘입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작 이후 두 개의 격주 단위 모임으로, 소설읽기 와 인문학모임 으로 분화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거쳐간 사람들은 약 20여 명에 이르지만 처음 시작했던 서너 명의 주축이 되는 멤버들은 꾸준히 계속하고 있습니다. 소설읽기 모임에서는 주로 노벨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을 읽었습니다만 그 외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목록 참조) 2017년부터는 소설읽기 모임의 멤버를 중심으로 100일 글쓰기 를 1년에 두 번씩 하고 있습니다. 이번 11월 중에 500번의 로으인 이라는 책을 결과물로 갖게 될 예정입니다.위에서는 계몽으로서의 인문학 운동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제가 독서 모임들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즐거움 때문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일은 일종의 노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쾌락이기도 합니다. 즐거움이 없다면 지속될 수 없습니다. 계몽의 요소가 다양하듯이 즐거움 또한 다양합니다. 독서 자체의 즐거움이 중요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 다른 생각을 발견하는 즐거움, 공동체가 주는 즐거움 등 다양한 즐거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 분이 모임에 오셨길래 무엇 때문에 왔냐고 물었더니,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렇죠. 그런 즐거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인문학은 계몽과 즐거움이라는 두 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질 수 있을 때 좋은 독서 모임들이, 그리고 인문학 운동이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갈매나무 인문학 모임의 책들2011-2012에이미 추아 제국의 미래, 우석훈 나와 너의 사회과학, 서동욱 철학연습 -서동욱의 현대철학 에세이,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켄 윌버 모든 것의 역사, 브라이언 그린 우주의 구조, 진중권 서양미술사 -모더니즘 편, 재레드 다이아몬드 문명의 붕괴, 정태인 착한 것이 살아남는 경제의 숨겨진 법칙, C. 치브리스 외 보이지 않는 고릴라, B.애런라이크 긍정의 배신, 권택영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슬라보예 지젝 죽은 신을 위하여, 에릭 홉스봄 폭력의 시대,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 사카이 다카시 폭력의 철학-지배와 저항의 논리, 아마르티아 센 정체성과 폭력, 자크 데리다 법의 힘, 에티엔 발리바르 폭력과 시민다움-반폭력의 정치를 위하여, 슬라보예 지젝 폭력이란 무엇인가 폭력에 대한 6가지 삐딱한 성찰, 마크 쿨란스키 비폭력,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한병철 피로사회, 김현대, 하종란, 차형석 협동조합 참 좋다, 스테파노 자마니 외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 김기섭 깨어나라! 협동조합, 김성오 몬드라곤의 기적, 생명운동이론지, 『모심과 살림』, 『2012 노원협동조합학교 강의록』, 정태인 (새사연 정태인 원장과의 세미나)2013-2014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 김상봉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김형미 외 한국생활협동조합운동의 기원과 전개, 이희한, (아이쿱생협 이희안님 초청강의), 그레그 맥레오드 지역을 살리는 협동조합 만들기 7단계, 김용한, 하재은 협동조합 시대-협동조합 설립과 운영 실무, 마이크 데이비스 슬럼, 지구를 뒤덮다, 에마뉘엘 레비나스 존재에서 존재자로, 엠마누엘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엠마누엘 레비나스 탈출에 관해, 엠마누엘 레비나스 윤리와 무한, 엠마누엘 레비나스 신, 죽음, 그리고 시간, 우치다 타츠루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Ⅰ,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파울 첼란 죽음의 푸가-파울 첼란 시선2015-2016로버트 단턴 책과 혁명-프랑스 혁명 이전의 금서와 베스트 셀러, 울리히 벡 위험사회-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 에라스뮈스-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앨런 와이즈먼 인구쇼크-과잉 인구시대, 지구와 인류를 위한 최선의 선택, 데이비드 프롬킨 현대중동의 탄생, W.J.T. 미첼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이미지의 삶과 사랑, 빌 리제베로 서양 건축 이야기, 캐롤 스트릭랜드 클릭, 서양 건축사, 안희경 문명, 그 길을 묻다, 수전 손택, 조너선 콧 수전 손택의 말-파리와 뉴욕, 마흔 중반의 인터뷰,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테리 이글턴 신을 옹호하다-마르크스주의자의 무신론 비판, 사사키 아타루 야전과 영원-푸코, 라캉, 르장드르,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마틴 메러디스 아프리카의 운명-인류의 요람에 새겨진 상처와 오욕의 아프리카 현대사, 케네스 포메란츠, 스티브 토픽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교역으로 읽는 세계사 산책, 프랭크 터너 예일대 지성사 강의, 찰스 테일러 자아의 원천들-현대적 정체성의 형성, 우석훈 88만원 세대, 엄기호 단속사회, 후루이치 노리토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니콜라스 판 르 코르뷔지에, 언덕 위 수도원, 제임스 캐럴 예루살렘 광기-왜 예루살렘이 문제인가, 유진 로건 아랍-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 정의길 이슬람 전사의 탄생-분쟁으로 보는 중동 현대사, 타밈 안사리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댄 주래프스키 음식의 언어-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2017-찰스 테일러 근대의 사회적 상상-경제, 공론장, 인민주권, 찰스 테일러 불안한 현대사회, 찰스 테일러 현대 종교의 다양성, 찰스 테일러 헤겔, 로널드 드워킨 신이 사라진 세상-인간과 종교의 한계와 가능성에 관한 철학적 질문들, 테리 이글턴 신의 죽음 그리고 문화, 테리 이글턴, 매슈 보몬트 비평가의 임무-테리 이글턴과의 대화, 마르쿠스 가브리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로저 에커치 잃어버린 밤에 대하여-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N. 엘리아스 문명화 과정 Ⅰ Ⅱ,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Ⅰ Ⅱ Ⅲ, 유발 하라리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Ⅰ Ⅱ Ⅲ Ⅳ, 진중권 서양 미술사 1, 2, 3, 4, 승효상, 묵상: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 (예정)갈매나무 소설읽기 모임의 책들2012년 3월 30일 현재김훈 화장,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스티븐 킹 미저리, 김원일 슬픈 시간의 기억, 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범신 은교, 오정희 동경, 강희진 유령, 옴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이미란 꽃의 연원, 다이 허우잉 사람아, 사람아, 에드거 앨런 포 더 레이븐/ 에드거 엘런 포의 그림자, 이화경 꾼, 이청준 서편제, 이청준 벌레이야기, 이청준 자유의 문, 이청준 가해자의 얼굴, 이청준 흰옷, 히가시노 게이꼬 용의자 X의 헌신, 가와비타 야스나리 설국, 오에 갠자부로 개인적인 체험, 마시마 유끼꼬 해피해피 브레드, 나쓰메 소세끼 마음,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아쿠타가와 류노스께 아쿠타가와 작품선, 아베 코보 타인의 얼굴, 무라카미 하루키 IQ84, 박완서 엄마의 말뚝, 박완서 나목, 박완서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박완서 저녁의 해후,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박완서 친절한 복희씨, 모옌 홍까오량 가족, 모옌 개구리, 김애란 달려라 아비, 김애란 외 2013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 김애란 「침묵의 미래」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염소의 축제 1.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나쁜 소녀의 짖궂음, 박민규 카스텔라, 헤르타 뮐러 숨그네, 헤르타 뮐러 저지대, 보르헤스 픽션들, 엘리스 먼로 행복한 그림자의 춤, 엘리스 먼로 디어 라이프, 한강 채식주의자, 한강 노랑무늬 영원, 르클레지오 사막, 르클레지오 황금 물고기, 전상국 우상의 눈물, 편혜영 외 2014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 편혜영 「몬순」외, 도리스 레싱 런던 스케치,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도리스레싱 황금노트북 1.2.3, 이기호 김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사과는 잘해요,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검은 책, 오르한 파묵 순수박물관 1.2, 성석제 투명인간, 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엘프레드 옐리니크 피아노 치는 여자, 엘프레드 옐리니크 탐욕, 요나스 요나손 창문너머 도망친 100세 노인, 이승우 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상의 노래, 이승우 생의 이면,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가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김숨 외 2015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 김숨 「뿌리이야기」외, 광주전남소설가협회 코뿔소와 벌레의 지문을 밀고하다, 김숨 국수, J.M.쿳시 추락, J.M. 쿳시 슬로우맨, J.M.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J.M. 쿳시 마이클 K, 정유정 7년의 밤, 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임레 케스테르 운명, 임레 케스테르 좌절, 임레 케스테르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박지원 열하일기1.2.3, V.S 네이폴 미겔 스트리트, V.S 네이폴 흉내, V.S 네이폴 자유국가에서, 밀란 쿤데라 정체성,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농담, 밀란 쿤데라 느림, 김경욱 외 2016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 김경욱 「천국의 문」외,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 세컨드핸드 타임,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 체르노빌의 목소리, 김경욱 소년은 늙지 않는다, 귄트 그라스 양철북 1.2, 귄트 그라스 넙치 1.2, 한강 소년이 온다, 주제 사라마구 수도원의 비망록,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도플갱어, 토니 모리슨 재즈, 토니 모리슨 빌러비드, 토니 모리슨 술라, ML. 스테드먼 바다 사이 등대, 나딘 고디머 거짓의 날들, 나딘 고디머 내 인생 단 하나뿐인 이야기, 나딘 고디머 보호주의자, 윌리암 트레버 여름의 끝, 카밀로 호세 셀라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카밀로 호세 셀라 벌집,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강태웅 이만큼 가까운 일본, 구효서 외 2017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 구효서 「풍경소리」외, 구효서 별명의 달인, 나지브 마흐푸조 우리 동네 아이들 1,2, 나지브 마흐푸조 미라마르, 월레 소잉카 해설자들, 월레 소잉카 오브 아프리카, 주노 디아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 이건혁 피코, 위화 형제, 줄리안 반스 시대의 소음,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존 밴빌 바다, 데이빗 헨리 황 M. 버터플라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시대의 사랑,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마, 가즈오 이시구로 녹턴, 온다 리쿠 꿀벌과 천둥, 가즈오 이시구로 우리가 고아였을 때, 손홍규 외 2018년 이상 문학상 작품집 손홍규「꿈을 꾸었다고 말했다」외, 가즈오 이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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