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ctId=bbs,fnctNo=3722 RSS 2.0 총 22 개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게시물 검색 제목 작성자 게시글 리스트 우리가 하는 일이 보이지 않나요?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휴머니스트) 정다은(시민참여자) 서점의 진열대에서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를 처음 봤을 때는 촌스러운 형광 녹색의 표지와 형광 분홍색의 띠지, 그리고 어쩐지 시비를 거는 것 같은 제목 때문에 웃고 말았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가 알지 못했던,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 중 노년 여성들의 삶과 이야기를 마주했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라는 시비조의 제목은 단순히 시선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노동을 애써 외면하며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를 향한 외침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중 노년의 여성 노동자들을 만나지만 그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식당 주방의 뜨거운 불과 숨 막히는 습기 앞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도 여성, 그 음식을 몇 번이나 나르는 것도 여성, 식사를 한 사람들이 남기고 간 뒷자리를 청소하는 것도 여성인데 너무 당연한 일로 여겼다. 식당뿐만이 아니다. 사무실이나 도서관 지하철 등의 청소를 담당하는 이도 대개 여성이고, 당연하다는 듯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이도 여성이다. 이처럼 실제 우리 사회에서 청소나 가사 등의 필수 노동은 6070 여성들이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은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주부 의 이름에 가려져 직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는 중 노년 여성들에게 당신의 노동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 라고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가사 노동과 요양사 일을 겸하면서도 그게 직업 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춘자씨(인터뷰이)에게 기자가 몇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며 감탄하자 내가 직업이 많은 줄은 몰랐는데. 어른하고 말하면 그래야제. 나 월급쟁이여라 하고 스스로 감탄하면서 자신의 노동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는데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과연 내가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은 하나같이 안 대단하면 어떡해 라면서 버틸 수밖에 없었던 시기에 대해 말하며 책을 읽는 나에게 현실적인 조언과 응원을 던져주었다.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말할 만큼 여성의 교육에 대해 무지했던 시기를 살아왔다. 지금이 중 노년 여성들이 겪은 시절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여성들이 결혼하고 임신하면 퇴사 눈치에 고민할 만큼 여성의 직업 안정도가 낮고 지속적이지 못하다. 내가 인터뷰에 응한 중 노년 여성들의 나이가 될 때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가 되어있을까.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책을 덮었을 때 비로소 나는 왜 이 책의 표지가 형광색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얼핏 촌스러워 보이는 이 형광색은 지금까지 그림자처럼 여겨졌던 중 노년 여성들의, 자신들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고 직업이 있음을 알리며 이제는 그림자에서 벗어나겠다는 외침이었다. 정다은 워킹맘.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해내고야 말겠다고 매일 의지를 다지는 중. 작성일 2023.03.09 작성자 관리자 조회 16 말의 힘을 믿으세요? 백승주, 미끄러지는 말들(타인의 사유) 송승범(시민참여자)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 문득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내 친구 K는 국어국문과 학생답게 언어를 아끼는 사람이었다. 흰 종이에 가지런히 쓰인 필체는 흰 건반 사이 단정히 놓인 검은 건반 같았다. 또한 일상적인 대화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시나 노래 가사 한두 줄 정도를 자연스레 인용할 줄 아는 낭만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애가 늘 공중파 교양 프로그램 같은 문장을 출력해내는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 나이 또래답게 유행어 사용에 몹시 능했고 또 때때로 어떤 경우에는 제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욕설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토록 다채로운 언어를 사용했던 K가 인상에 깊이 남은 까닭이 있다. 그 애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절대 나쁜 말은 하지 않았다.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면 그대로 자기에게 돌아온다고 믿었기에 차라리 입을 다물고 만다고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 혹은 발명을 고르라고 하면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것을 고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언어가 없었다면 그 찬란한 순간들은 공유되거나 쌓이지 못한 채 다시 무위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 언어에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은 것이 바로 일본의 언령 이다. 숫자 4와 죽을 사의 발음이 같아 병원과 같은 공공시설에서 사용을 지양하는 것을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뭐 이런 걸 다 신경 쓰냐고 할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도 중요한 시험을 앞둔 사람 앞에서 미끄러지다 라거나 떨어지다 는 말을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언어가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임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지표라면 나날이 발전해가는 매체 산업과 그 익명성 아래, 더 나쁜 말을 내뱉는 것이 스포츠가 되고 돈벌이가 되는 요즘엔 차라리 근거 없는 미신이라 해도 말에 깃든 힘을 믿는 쪽이 더 괜찮지 않을까 싶다. 그야 입으로 배설하는 것보다는 듣는 이의 상황과 기분에 맞춰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는 게 더 낫지 않은가. 소중한 인연을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개인과 사회를, 시대와 시대를 이어주는 장치이고 이를 사용하면서 더 신중한 사람이 되자고 다시금 되새기게 해주는 책이었다. 송승범 꿈뻑꿈뻑 소 눈을 가진 직장인 작성일 2022.08.10 작성자 관리자 조회 10 애도의 여로 호프 에덜먼, 슬픔 이후의 슬픔(다산초당) 이연숙재난이나 사고, 갑작스러운 질병처럼 예상치 못한 이별이든 어느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다가온 죽음이든 인간의 생애는 유한하기에 우리 삶에는 언제나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한다. 남겨진 이들은 그래도 산 사람을 살아야지. 라는 명령에 따라 사랑하는 이의 부재로 인한 슬픔을 극복하고 주변을 정리하며 무너진 일상을 다시 정상 궤도 로 올려놓는 작업에 열중한다. 하지만 떠난 이의 소지품과 옷을 태운다고 해도 슬픔은 그처럼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 더는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상실에 대한 공포와 괴로움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정상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에 휩싸인다. 그래서 그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일상에서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기도 한다. 책의 저자 호프 에덜먼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프 에덜먼은 10대에 어머니를, 20대에 아버지를 잃었다. 남겨진 동생들을 추스르고 무사히 장례식을 마친 후, 대견하다는 주변의 목소리에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저자는 오히려 너무 완벽히 건넨 작별 인사 탓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라고 말한다. 소중한 이의 죽음과 이로 인한 슬픔은 정상적인 일상을 영유하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대상도 아닐뿐더러 애초에 죽음을 극복 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애도 역시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를 굴복시켜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정 이다. 만약 우리를 구성하는 신체 기관의 일부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그 공백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다시금 익혀야만 한다.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과 많은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마음과 감정 역시 인간의 일부임을 부정할 수 없다면 나를 이루던 이 를 떠나보낸 사람에게 아직도 잊지 못 했냐고 묻는 것은 너무 잔인한 말이다. 애도는 단순히 고인의 흔적을 지워내는 고독하고 쓸쓸한 것이 아니라, 슬픔과 함께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원하는 만큼 말하면 그 이야기들을 들어 줄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는 기나긴 여로가 아닐까. 이연숙 건강한 삶을 영위해 나가는 중. 작성일 2022.06.13 작성자 관리자 조회 10 여자, 진짜로 라이벌이 필요해 권김현영, 여자들의 사회(휴머니스트) 배소영(시민참여자) 대중문화가 대중의 욕망을 반영함과 동시에 수용자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제작자들은 누구보다 빨리 대중들이 바라는 것을 포착하고 작품에 접목하려 한다.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로맨스 장르의 하위 범주인 로맨스 판타지 장르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2010년대 이후 기존 로맨스 장르에서 통용되었던 서사 장치들이 여성 독자들의 공감과 몰입을 불러오기 어려워진 사회 문화적 맥락을 제시한다. 어떤 자본을 가지고 태어났는 지에 따라 자라온 환경과 가치관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제 재벌가의 남주인공과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착한 여주인공 앞에 꽃길이 펼쳐질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러한 까닭에 소위 로판 주인공의 이야기는 전이, 환생, 회귀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로판 역시 기존 장르의 문법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주인공과 적대하는 반동 인물의 성별이 여자일 경우(모든 맞수가 반동인물인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그들이 가진 사연과 상관없이 무조건 나쁜 년 이 되며 이에 대한 비난 자체가 하나의 밈으로 자리 잡을 정도이다. 슬램덩크 의 강백호와 서태웅처럼 혹은 배트맨 의 배트맨과 조커처럼 소년 만화의 남자 라이벌이 또 다른 주인공 이나 진짜 주인공 으로 여겨지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에 비교하면 이 나쁜 년 들의 역할은 그저 방해물이자 욕받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소위 소년 만화 와 달리 두 주인공의 사랑이 필수 불가결한 로맨스 장르의 특징상 사랑을 방해하는 악녀 라는 클리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익숙한 장치는 안정된 재미를 보증하니까.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남발하는 것은 피로감을 불러일으키고 왜곡된 편견을 고착화할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여성 캐릭터들이 주인공에게 맹목적으로 호의적이라면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요소들이 현저히 적어질 것이고 갈등이 없으니 사건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캐릭터의 모습을 보여줄 방도가 없기에 인물 간의 이야기는 종이 한 장보다 더 납작해져, 결론적으로 굉장히 재미없는 작품이 되고 말 것이다. 즉 숙명의 라이벌은 단순히 작품 내 성애의 유무가 아니라 서사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난 자매애는 그냥 생기지 않는다. 라는 작가의 말에 유리가면 에 등장하는 마야와 아유미의 관계가 떠올랐다. 유리가면 은 3대에 걸쳐 보는 만화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을 가진 순정만화로 그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주인공인 마야와 라이벌인 아유미가 전설의 연극 홍천녀 의 주연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이야기다. 마야는 어머니와 둘이 살며 어머니가 고용된 식당 위층에 얹혀사는 가난한 여자애로 뒤늦게 연극에 뛰어들어 오로지 그 재능 하나만으로, 홍천녀를 연기했던 전설의 배우인 츠치카게 치구사의 눈에 띄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다. 반면 아유미는 유명한 배우인 어머니와 감독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화려한 배경과 외모로 아역 배우 시절을 거쳐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배우다. 그러나 그녀는 사실 피나는 노력이라는 말이 부족할 만큼의 수재로, 아유미는 마야와 경쟁하며 단순히 역할에 몰입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인물 그 자체가 되는 마야의 순수한 재능에 좌절한다. 그러나 마야 역시 자신에게 없는 표현력과 기술을 지닌 아유미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둘의 갈등은 무너져 내린 절벽에서 네 손을 놓을까 망설였다는 아유미의 고백 장면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머리채를 잡고 진흙탕을 구르며 진심을 토해내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독자로서는 주역의 영광을 차지하는 것이 최후의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두 명 모두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싸우다가 정든다는 옛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반목하다가도 오롯이 서로를 인정하고 연대할 수 있는 인물들이 서사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그래야만 독자는 자기 경험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다. 그제야 텍스트는 단순히 글 몇 줄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읽고 작품이 지금은 고구마 100개라도 삼킨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재미없다 , 답답해서 하차한다. 라는 댓글을 다는 대신에 잠깐 쉬어라, 그리고 다시 읽어라. 아마 그 시간 동안 쌓아 올린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배소영 영화와 소설과 음악을 사랑하며 삶을 위로하는 중. 작성일 2022.03.24 작성자 관리자 조회 12 당신의 곁에도 압둘와합이 있나요? 김혜진,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원더박스) 손영님(시민참여자)2021년 8월 탈레반의 공격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이 함락되었다. 아프가니스탄 내의 한국 협력자들은 신변 위협에 노출되었고, 주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은 아프간 조력자들과 그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미라클 작전 을 펼쳤다. 많은 어려움과 돌발 상황에도 불구하고 391명의 아프간 조력자들은 국내로 무사히 입국할 수 있었고 그들은 난민 이 아니라 특별 기여자 로서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가게 되었다. 아프간 조력자들은 특별 기여자 로서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지만, 자국의 위험을 피해서 한국에 온 사람들은 이들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에는 시리아 난민이 있었고 2018년에는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로 입국하여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다.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나라로 더 이상 난민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제3세계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분위기와 편견이 만연되어 있다. 한국 내 난민과 제3세계 외국인들은 차별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는 그 문제에 서 있는 시리아인 압둘와합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중학교 교사인 저자가 시리아인 압둘와합을 만나면서 한국의 차별과 편견의 굴레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난민의 처지가 된 와합과 그 가족들이 겪는 아픔을 통해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와합을 만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슬람 인에 대한 편견에 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데, 사실 저자의 편견은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 인에 대한 많은 부정적인 단어와 인식이 그러하듯 저자 역시 와합을 만나기 전에는 불안했지만, 막상 와합과 만나자 그가 얼마나 재미있고 진취적인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며 자신의 편견을 반성한다. 이제 저자는 와합과 함께 시리아 난민을 돕는 헬프 시리아 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헬프 시리아 는 유튜브와 라디오 등에서 시리아 난민을 돕기 위한 활동들을 지속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와합과 친구가 되자 무슬림이나 외국인이라서 겪는 많은 차별이 내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는 문장이다. 저자의 말처럼 난민이나 이주민과 함께 사는 삶은 이제 더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방에서는 인력의 많은 부분을 이민자에게 기대고 있는 실정이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의 부모는 국적이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난민과 외국인 부모에게 편견을 갖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의 삶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섭고, 무섭기 때문에 배척하지만 이들 역시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우리와 함께 걸어가야 할 옆집 사람들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특별 기여자들 역시 여타의 난민들과는 다른 조건으로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만 한국 사회에 깊게 깔린 배타적 분위기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처럼 하나씩 자신의 편견을 깨우쳐 나가고 시야를 넓게 가진다면 미래에는 와합이 겪었던 차별과 어려움이 사라지지 않을까. 손영님 광주광역시 거주.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사회의 편견을 없애기 위해 내 안의 편견부터 점검하고 있음. 작성일 2021.12.15 작성자 관리자 조회 9 귀신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들 전혜진, 여성, 귀신이 되다(현암사) 김유경(시민참여자) 어릴 때 콩쥐와 팥쥐, 장화와 홍련 같은 옛날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나쁜 짓을 하면 언젠가 벌을 받는다는 교훈만을 생각했지, 거기에서 여성의 삶을 읽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권선징악의 교훈뿐 아니라 문학과 설화 속에 숨겨져 있는 여성의 삶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시대를 주도했던 성리학적 관점을 통해서 해석한다. 2021년 현대에도 여성은 하루가 다르게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과 N번방과 같은 성범죄에 노출되어 몸가짐을 조심히 하라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가해자가 그런 폭력적인 행동을 할 여지를 줬다는 어불성설적인 논리 때문에 여성들은 피해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보다 더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 이는 조선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자결해야 했고 연심도 욕망도 쉽게 드러낼 수 없었다. 성리학이 대두되면서 여성이 자신의 연심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견고한 남성 중심 사회이자 가부장제 환경에서 여성은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쉽게 말할 수 없다. 아들을 낳지 못한 며느리는 집안의 식구로 인정받지 못했고, 딸은 아들보다 뒷전이었으며 정실과 첩의 관계에도 분명한 상하와 압박이 존재했다. 절대적인 약자로 있을 수밖에 없던 여성은 이 과정에서 귀신이 되고 괴물이 되었다. 인상 깊었던 이야기 중에 하나는 장화와 홍련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 배 좌수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큰 딸인 장화는 계모 허 씨의 모함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 죽임을 당하고, 둘째 딸인 홍련은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하고자 한다. 원님이 장화와 홍련의 원혼을 풀어줄 때까지 이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밤에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나쁜 짓을 하면 언젠가 벌을 받는다 가 아니라 아버지 배 좌수는 딸이 모함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무엇을 했냐는 것이다. 콩쥐와 팥쥐 역시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최만춘은 이름만 등장하지 계모가 딸을 괴롭히는데 딸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 이런 세계에서 원님은 괴롭힘 당하던 이들을 원한을 해결해주고 계모를 징벌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 이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계모와 전처의 딸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인데 책에서는 계모의 악랄한 행동 역시 계모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현실에서도 아동 폭력이나 가정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먼저 어머니를 비난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계모일 경우에는 그 비난이 더 거세지며 계모니까 당연히 전처의 아이를 싫어할 것이라는 프레임을 뒤집어씌운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제외되며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의 비난에 가려지곤 한다. 모든 문제를 계모 탓으로 돌리며 사회적 구조적인 문제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사회적 구조적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약자가 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금껏 생각해보지 않았던 옛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여성의 고통이 담겨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고 과거와 지금이 얼마나 다른지 되짚어 보게 되었다. 미래에는 여성들이 받는 사회적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기를 희망한다. 김유경 문화노동자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성일 2021.09.28 작성자 관리자 조회 9 정신 질환을 앓는 가족과 함께 공존하기 리베카 울리스,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서울의학서적) 김예슬(시민참여자)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 남양주 존속 살인 사건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이 사건은 조현병을 앓고 있는 아들에 의한 존속 살인이었는데 살인이 발생하기 전 수없이 많은 예고가 있었음에도 막지 못한 불행한 사고였다. 흔히 정신 질환이나 조현병이라고 하면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일이고 내 주변에는 질환자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송에 의하면 조현병의 실제 유병률은 100명에 1명이고, 4인 가구라고 치면 25가구 중에서 1가구, 즉 우리가 사는 아파트의 1가구에는 조현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을 것으로 파악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환자들은 숨어있고 그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치료와 도움을 받지 못하니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개선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며 방송은 끝난다. 이 방송을 보고 놀랐던 부분은 조현병의 유병률이 100명 중의 1명이라는 점이었다. 100만 명도 아니고 100명 중 한 명이라며 우리에게 친근한 아파트 단지에도 환자가 있을 수 있다니 놀랍기도 하고 어째서 그들을 만나지 못했는지 궁금하던 찰나 이 책을 보게 됐고,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과 가족을 위한 안내서라는 안내 문구에 끌려 읽게 됐다. 이 책은 생소한 정신 질환에 관한 내용임에도 글과 예제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질환자의 증상과 증상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이 어째서 유리되는지, 그럴 때는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섬세하게 길잡이를 해주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정신 질환의 대표적인 증상은 환각과 망상이 있지만 이뿐만 아니라 우울과 무기력처럼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경우에 대해서도 가족들이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빨리 이 책을 읽었더라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부모님이 상실감으로 고생하셨을 때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게 됐다. 그때에는 단순히 옆에 있으면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하고 버텼지만 책에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되 가족이 함께 우울해지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현실적인 계획과 대처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족이 함께 우울해지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내 정신이 건강해야 함께 있는 가족도 죄책감이나 우울에서 더 빨리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부모의 상실 뒤 우울감에 예민해져있는 부모님과 대화하며 때로는 나도 상처받고 힘들 때도 있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고 조금 더 빨리 공부했더라면 보다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함께 들었다. 사람은 매일같이 즐거울 수 없고 매일같이 건강할 수 없다. 건강한 운동선수도 감기에 걸릴 때가 있는데 우리의 정신도 어찌 매일같이 건강할 수 있을까. 이처럼 정신 질환은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님을 인식하고, 정신질환자에게 사회적인 낙인을 찍고 배척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치료하고 도우며 이겨나가야 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육체적인 질환과 달리 정신적인 질환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대하고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어려움을 느낀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지만 이 책을 통해서 조금 더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도움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 또한 정신 질환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배척하고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적절한 사회기반시설 및 제도의 도입과 개인들의 사고의 전환을 바탕으로 함께 공존하며 사회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길 바란다. 김예슬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며 공존하는 세상이 오기를 희망하는 사람. 작성일 2021.08.20 작성자 관리자 조회 11 가족으로 보는 역사 이순구, 조선의 가족 천개의 표정(너머북스) 오수연(시민참여자)이미 사라진 나라이건만, 조선은 우리에게 참 멀고도 가깝다. 전국을 여덟 개 도로 나눈 태종의 행정 구역 분류는 오늘날에도 각 지방의 문화적 특색이나 정서적인 소속감을 구분하는데 유효하다. 물론 이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례를 찾을 수 있겠으나 매년 실시되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시대별로 가장 많은 출제 비중을 차지하는 시대가 바로 조선이라는 점만 언급해도 한국인들에게 있어 그 중요함이 어느 정도인지 설명하는 것은 크게 무리가 없다. 조선의 건국은 단순히 왕조의 교체가 아니라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국가 기반을 완전히 새롭게 조성하려는 시도였다. 1392년 이성계를 주축으로 하는 신진사대부 세력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위화도에서의 회군으로 실권을 획득한 이들은 불교를 기반으로 삼았던 고려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유교 사상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당시 유교는 선진국이라 여겨지던 중국에서 도입된 첨단 문물로 지배층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나 점차 사회 전반에 걸쳐 크게 확산되었다. 유교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가치관이 수립되고 이것이 사회 전반의 보편적인 윤리로 작용하면서 조선은 번영과 안정을 누릴 수 있었다. 저자는 이 과정 속의 가족 의 역할에 주목한다. 조선에서는 부부가 중시되고 교육 복지와 같은 사회 운영의 일정 부분이 가족 에게 일임되었다. 심지어 조선 말기에는 국가는 없고 집안만 있을 정도였다. 라는 저자의 말은 세도 정치가 횡행하던 19세기 전반의 모습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문이 출세하거나 혹은 가문째로 축출되거나 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보니 조선 시대 사람들은 개인이 아닌 가족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그 예로 김종직을 들 수 있다. 조선 초기 사림파 김종직은 부인 조 씨가 죽은 지 3년 만인 쉰다섯 살에 열여덟 살의 두 번째 부인과 재혼했다. 대체 왜 그랬을까?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당시에 이는 집안이 몰락할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얽혀있다. 1485년에 반포된 경국대전에는 재가하거나 실행(失行)한 부녀의 아들 및 손자, 서얼의 자손들은 과거를 볼 수 없다는 법이 명시되어 있었다. 김종직의 재혼이 이루어질 당시에 그에게는 정실부인에게서 낳은 아들이 없었다. 과거를 볼 수 없는 양반 남자는 관직에도 오르지 못한다. 벼슬길에 오를 수 없다면 가문은 번성할 수 없다. 게다가 양자 제도 역시 확실히 자리 잡지 못했다. 양자를 들일 수 없다면 양반 여성과 혼인을 해야 하는데, 양반 여성들의 재혼이 엄격히 금지되었기에 김종직과 동년배이면서 초혼인 양반 여성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듯 김종직의 재혼은 그를 위시하여 이루어진 가문의 생존전략이었던 셈이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한국에서 절대 망하지 않는 드라마 소재 중 하나가 입시(자녀의 입시를 둘러싼 경쟁과 이로 인해 파생되는 비리)라는데 어쩌면 이러한 과거 때문에 우리가 소위 말하는 막장 입시 드라마에 열광한다고 생각하면 꽤 재밌다. 이렇게 가족과 같은 일상적인 소재를 매개 삼아 구조적인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고 사회적 성공에 대한 욕망, 가문의 안녕 등 우리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욕망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역사는 살아있고 사람은 살아간다. 오수연 인문학을 공부합니다. 작성일 2021.07.12 작성자 관리자 조회 9 원룸을 전전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젊은이들 이혜미, 착취도시, 서울(글항아리) 주유현(시민참여자) 내가 처음 자취를 시작한 곳은 약 5평의 건물,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5만원의 방이었다. 부모님의 품에서 빠져나와 혼자 살게 된다는 설렘에 두근거렸던 것도 잠시 학교와 가깝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볼 수 없는 6평의 공간을 보고 마음이 갑갑해졌다. 5층짜리 건물의 4층. 그나마 햇볕이 들어와서 여자가 살기에는 좋다고 부동산 아저씨는 말했지만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건물은 흐린 날이면 하수구 냄새가 열어둔 창문을 넘어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이게 나만이 경험한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20대의 평균에서도 좋은 축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학자금 대출을 받지 않아도 대학을 다닐 수 있고 보증금 500만원과 월세를 내 줄 부모님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이 책에 공감하며 읽게 된 것은 쪽방촌과 착취 도시라는 단어가 내 스무 살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책을 열어봤을 때는 글쓴이가 기자라는 것도 쪽방촌의 빈곤 비즈니스를 고발하는 기사를 썼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착취도시, 서울 의 지은이인 이혜미 기자의 2019년 5월 7일 한국일보의 기사는 나도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가난이 누군가에게는 꼬박꼬박 월세가 나오는 돈벌이며 투기처가 되고 있다는 헤드라인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분노와 함께 허탈함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었다. 가진 게 없어서 주거 용도가 아닌 근린 생활 시설의 건물 5평의 원룸에 살고 쪽방촌에 살고 있는데, 이런 내 삶이 가진 사람에게는 돈벌이의 수단이라니 믿기 어려웠지만 이것이 현실이었다. 내가 처음 자취를 시작했던 곳 역시 5층 건물의 20개로 방을 쪼갠 곳이었다. 방 하나에 30만원씩 월세를 받는다고 치면 600만원이 매달 고스란히 건물 주인의 주머니로 들어가는데 이것을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표현할까. 이런 문제는 비단 쪽방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몇 년 전 한양대의 기숙사 증축에 반대하는 원룸촌 사장들의 이기심이 뉴스에 연일 보도되었다. 이유는 한양대 기숙사가 들어서면 자신들의 건물에 들어올 학생들이 없어서 벌이가 사라진다는 이유였다.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쪼개고 쪼갠 5평 남짓한 방에서 스무 살의 학생들은 버티고 있었다. 그나마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서 좋은 직장에서 일하기 위해서 방음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방에서 버틴다는 것이다. 착취도시, 서울 을 읽으면서 원룸이 아파트나 타워 팰리스보다 평당 가격이 비싸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더 넓고 좋은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5평 남짓한 곳에서 사는 사람이 어째서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는 열심히 살지 않아 영원히 그런 집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원룸에 사는 학생들이 그들의 생각처럼 모두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서울이나 부산 혹은 광주와 같은 광역시의 큰 도시에서 일하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으며 5평 남짓한 공간에서 버티는 것이다. 필사적으로 버티는 이들에게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손가락질을 보내는 게 옳은 일일까? 가진 게 없어서 원룸과 쪽방촌으로 내몰린 이들을 비난하기보다는 약자를 착취하는 구조를 바꾸는 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집이란 버티는 곳이 아니라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니까. 주유현 내집마련을 꿈꾸는 흔한 자취러. 작성일 2021.04.12 작성자 관리자 조회 8 ‘완벽’보다 어려운 임솔이(시민참여자)아마 완벽 하다는 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단 두 음절만으로 경탄에 가까운 흠모와 찬사를 아우르는 단어!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 은 그런 완벽 한 집사를 다룬 이야기로, 1956년 여름 잠시 저택을 떠나게 된 집사의 여행기이자 동시에 그가 지나온 삶을 여로를 되짚어가는 소설이다. 주인공 제임스 스티븐슨은 그야말로 완벽한 집사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35년간 저명한 귀족 가문인 달링턴 가문의 집사로서 저택을 관리하고 주인을 보좌하는 업무를 빈틈없이 수행했다. 사용인들을 고용하고 관리하는 엄격한 기준은 자기 자신에게도 예외가 없어서, 달링턴 홀의 은 식기는 늘 얼룩 하나 없이 광택을 유지하고 그 거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달링턴 홀의 모든 창에는 먼지 가리개 한 장도 씌워져 있지 않다. 저택은 잘 관리되어 있고, 대접은 융숭하니 저택을 방문한 모든 손님은 달링턴 홀의 우수한 집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 완벽한 집사가 충정으로 모시는 달린텅 경은 온화한 성품에 혼란한 조국 걱정에 잠 못 이루는 그야말로 신사 중의 신사 라는 평이 가장 적합한 인물이니, 이 두 콤비는 안정적인 구도를 착실히 따르는 완벽한 그림인 셈이다. 어느 정도 자질을 갖춘 집사라면 완전하게 그리고 전적으로 자신의 역할 속에 사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마땅하다. 자신의 역할이 무슨 판토마임 의상이라도 되는 양, 아무 때고 벗어 던졌다가 다시 착용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스티븐슨의 직업정신은 이상의 경지에 도달한 장인과도 같다. 그는 세계라는 큰 무대에서 활약하는 달링턴 경을 뒤에서 보좌하고 모실 수 있음을 더할 나위 없는 영광으로 생각하며 이를 평생의 소임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켄턴 양에 대한 연민이나 아버지의 죽음은 집사 로서 자신을 완벽히 수행하기 위해 묻어둘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완고할 정도의 일념은 집착과도 같아서 때로는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달링턴 경은 1930년대 유럽의 상황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기에, 흔쾌히 자신의 저택을 국제적 인사들의 비공식 회담의 장소로 제공했다. 그러나 순수한 선의로 시작한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달링턴 경은 나치의 사상에 동화되었고 그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하녀들을 해고할 것을 명령하기에 이른다. 주인의 말에 따르는 것이 집사의 미덕이라고 생각했기에 스티븐슨은 마치 식료품 주문 목록을 논하듯 루스와 사라에게 해고를 통보한다. 제 기억으로 당신은 루스와 사라를 내보내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고 온당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셨어요. 분명히 반기시는 것 같았다고요. 켄턴 양, 그럴 리가 있겠소. 그렇게 생각한다면 온당하지도 공정하지도 못한 거요. 사실 그 일로 나도 걱정이 많았어요. 솔직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었소. 그런 일은 정말, 이 집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오. 그렇다면 스티븐스 씨, 왜 그런 얘기를 그때 저한테 하지 않았어요?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지만 대꾸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내 머릿속에서 그럴듯한 말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켄턴 양이 먼저 바느질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스티븐스 씨, 당신이 그런 생각을 작년에 털어놓았다면 저한테 얼마나 힘이 되었을지 알기나 하세요? 제 수하 처녀들이 해고되었을 때 제가 얼마나 심란했는지 뻔히 알고 계셨잖아요. 당신이 한마디만 해 주었어도 큰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말해 보세요, 스티븐스 씨, 당신은 왜, 왜, 왜 항상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살아야 하죠? 종전 후, 달링턴 경은 나치로 지탄받아 불명예스럽고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달링턴 경 사후, 스티븐슨은 달링턴 가문이 200년 넘게 소유해 왔던 저택과 함께 미국인 갑부 패러데이에게 영국식 서비스 제공자 라는 일괄 거래의 한 품목으로써 함께 양도 된다. 달링턴 경은 전통적인 신사 그 자체였지만 사태에 대한 대응은 그저 아마추어 수준 에 그쳤으며 결국 모든 것은 안쓰러운 헛수고 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스티븐슨은 자신은 그저 능력 닿는 데까지 성실히 직무를 수행했을 뿐이며 그러한 자신에게 응분의 가책이나 수치를 느끼길 강요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스티븐슨은 몰랐을까? 아니다. 이는 하녀들을 해고한 뒤에 켄턴과 나눈 대화에서 확실히 나타난다. 게다가 그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자신이 달링턴 경을 모셔왔다는 것을 시치미를 떼고 본인이 왜 그렇게 했는지 끝없이 자문하며 이유를 찾는다. 이러한 행위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스티븐슨은 무엇이 최선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판단을 위임하고 사고를 회피한 결과로써 진심으로 아끼고 섬겼던 주인의 비참한 최후에 일부분 기여한 셈이다. 여행의 막바지에서, 그는 20여 년 만에 켄턴과 재회한다. 스티븐슨은 그녀가 하녀장의 자리를 맡아주길 바라지만 켄턴은 남편에 대한 애정과 곧 태어날 손자를 이야기하며 지금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는 대답을 전한다. 스티븐스는 켄턴 양이 아닌, 벤 부인으로서 그녀와 작별의 인사를 나누며 헤어진다. 지는 해를 바라보는 스티븐슨은 쓸쓸하게 보이지만, 한 편으로는 후련해 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완벽한 사람보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집이 세지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일 인분의 경험이 그 사람의 가장 확실한 근거로 자리 잡기 때문일 것이다. 집사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시점에서, 옛사랑과의 만남과 이별을 통해 과거는 분명 아름다웠으나 시간을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 변화를 인정하고 다시금 시작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분명 그에게는 앞으로 남아 있는 나날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보다 길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흐름을 받아들이면서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려는 모습에서 우리는 희망찬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비록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겠지만 조그만 변화를 받아들인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는. 임솔이 좋은 날을 꿈꾸는 사람 작성일 2021.02.26 작성자 관리자 조회 9 처음 13 1 2 3 다음 페이지 끝